백마강에는 낙화암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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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74
  • 한지윤
  • 승인 2021.01.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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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대책이 뭐냐?”
아무도 말이 없었다.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는 왕자나 신하를 바라보면서 의자왕은 만감이 교차했다.
“제기랄, 지금 나당연합군이 탄현과 기벌포를 지나 길을 나누어 사비성을 향해 쳐들어오고 있으니 백제 사직이 위태하오. 장차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급하니 좋은 방도라도 있으면 말들 해보시오?”
모두가 다 꿀 먹은 벙어리였다. 아무런 대책도 갖고 있지 않은 왕자와 신하를 바라보는 의자왕의 가슴은 공허와 좌절감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이 때 이미 의자왕의 곁에는 믿을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좌우에 충신은 한 명도 없었고 권모술수에 이골이 난 간신배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위급한 관두에 부닥치고 보니 ‘한복’이란 두 글자 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태자 효(孝)가 숨막힐 듯 한 분위기를 깨뜨리며 말문을 열었다.
“신이 생각하옵건대 사비성은 이미 보전하기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대왕께서는 우선 곰나루 성으로 잠시 몸을 피하신 후 다시 의병을 모아 적들을 물리치고 나신 후에 사직을 보전하시는 것이 상책인 줄 아옵니다.”
태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이번에는 둘째 왕자인 태(泰)가 얼굴을 슬며시 들며 말문을 열었다.

“불가하옵니다. 나라의 도성을 버린다는 것은 어느모로 보든지 불리하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무조건 항복하는 일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면서 의병을 모아 죽기를 맹세하고 싸워서 적군을 물리치고 나라의 성을 반드시 지켜야 할 줄로 압니다.”
둘째 왕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셋째 왕자인 융(隆)이 말문을 열었다.
“도성을 버린다는 것도 불가한 일이고 지킨다는 것도 불가한 일입니다. 지금의 정세를 살펴볼 때에는 버릴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황공하오나 신의 생각으로는 적진에 후한 예물을 보내어 퇴병을 간청하는 것이 만전지책일 줄로 아옵니다.”
결국 세 왕자는 각자가 제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무엇하나 뚜렷한 대안도 없이 한낱 감상적인 얘기들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의자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한숨만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은 신하들을 둘러보며 물었으나 그들도 역시 꿀 먹은 벙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세 왕자의 주장이 각기 다르면서도 모두다 일리가 있으니 제각기 제 주장대로 하도록 하거라. 과인 잠시 태자와 함께 곰나루 성으로 가서 훗날을 도모할까 하노라.”
의자왕은 그 어느 일방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마침내 ‘각자위정(各自爲政)’의 한심한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이런 탁상공론 중에도 적군은 어느새 사비성 밖의 30리 지점까지 육박해 와 있었다. 당나라 소정방의 군사들은 660년 7월 10일,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였으나, 김유신이 거느리는 시날 군사들은 황산벌에서의 격전 때문에 하루 늦은 7월 11일에 예정된 장소에 도착되었다.
원래 그들의 계획은 7월 10일 사비성 아래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합류하기로 한 날로부터 하루가 늦어지자 소정방은 노발대발 하였다.

“신라 군사들이 군율을 어겼으니 엄격히 다스려야 한단 말이야!”
소정방은 신라 군사들이 하루 늦게 도착한 것을 트집 잡아 신라의 독군(督軍)인 김문영(金文穎) 장군을 죽이려고 하였다. 독군이란 것은 군사들의 군기를 바로 잡고 작전의 시일 같은 것을 완벽하게 지키는 임무를 띤 장수를 말하고 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유신 장군도 노발대발 하면서 야단이었다.
‘이것은 이제 사비성을 깨뜨리고 백제를 멸망시키는 공로를 독차지 하려는 수작이야 우군으로서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이거 보통일이 아니구먼!’
김유신 장군은 곧바로 소정방 장군의 군막을 찾았다.
“장군, 이게 무슨 처사이시오? 우군의 장수를 죽이는 법이 어디에 있소? 당치도 않은 소리를……”
김유신 장군은 어찌나 노하였던지 눈이 보름달같이 휘둥그레져 있었고 눈썹마저도 꼿꼿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만저만 화가 치민 것이 아니었다.
“신라 군사들이 군율을 어겼으니 독군의 머리를 베는 것쯤이야 당연 응당한 일 아니오?”
소정방도 김유신 장군에게 지지 않으려고 한마디 되받았다.
“그것은 장군이 황산벌 싸움이 어땠는지 모르고 하는 말씀이요. 귀군처럼 큰 싸움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가 하루가 아니라 이틀도 먼저 올 수 있었을 것이요. 상황을 알고서나 그런 소리를 하면 또 모르겠소!”
“그것은 변명이요.”
“당장 닥치시오. 정 그렇다면 우리는 백제를 치기 전에 우선 당나라 군사들과 부득이 일전을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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