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현충일을 맞이하며
상태바
6월 현충일을 맞이하며
  • 이용록 <전 홍성군 부군수>
  • 승인 2021.06.03 0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어린아이의 잘 자람에 감사하는 등 사람에 대한 감사가 감사의 대상이었다면 6월은 국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 달이다. 

특히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과 국군 장병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이다. 6·25전쟁 당시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고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했는데 휴전 후 3년이 지난 1956년에 법으로 정해 매년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며 추모일로 보내게 됐다.

6월 6일이 현충일로 지정된 것은 우리나라의 세시 풍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24절기 중 9번째 절기로 보리가 익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시점을 망종이라 했는데 이날은 1년 중 가장 좋은 날로 여겼다. 손이 없는 청명과 한식에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만종에는 제사를 지낸 풍습이 전해 내려오기도 하며 고려 시대에는 이때에 전쟁 등에서 전사한 장병의 뼈를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에는 6월 6일에 병사들의 유해를 매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의 영향으로 1956년 당시 망종이던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많은 국가들의 롤 모델로 성장해 왔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유럽 선진국에 비해 뒤지지 않고 정보의 전산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세계의 중심으로 일어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충절의 마음이다. 어린 나이에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장으로 뛰어든 학도병을 비롯해 뻔히 보이는 죽음 앞에 굴하지 않고 뛰어든 선열들의 희생은 눈부신 발전을 이룬 오늘의 초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 중 일제 치하를 경험한 국민의 수가 10% 미만이며 6·25를 경험한 세대를 포함해도 15%를 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연령으로 구분한 것이지 기억 속에 실제 체험을 한 인구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나라의 소중함과 국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피부로 느끼는 경우는 해외에서 고국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는 경우를 포함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언론이나 사회적 상황은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개인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사회 현상 또한 단체의 집회 결사를 통한 권익 추구가 애국심보다 몇 배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기기 일쑤다. 

이러한 상황 속에 애국을 강조하는 것은 시쳇말로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6월 한 달만이라도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기를 원한다. 홍성은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홍성군민들은 구국의 일념으로 들고 일어났다. 최영 장군의 기개나 성삼문 선생의 충절이 훗날 의병장 민종식이 있게 했고 한용운과 김좌진의 애국심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국가의 성립은 국민과 주권과 영토라는 3요소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것을 우리는 중학교 시절 배웠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세 가지 모든 요소를 갖췄기에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이름의 국가를 이루고 우리는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초석의 역할을 감당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산화한 국군장병과 순국선열 그리고 애국지사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빕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