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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1.08.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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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24〉
김병헌(8) 〈심심한 연꽃〉 36×26㎝ 싸인펜.

얼마 전에는 전남 어느 고장에서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낸 사연을 TV를 통해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압박과 설움의 세월, 6·25 전쟁의 쓰라림, 배고픈 보릿고개 시절의 궁핍을 간단한 그림과 글로 표현하였고 책으로 엮은 거였습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인데도 어르신들의 손놀림과 목소리로 표현된 것이어서 그런지 울컥 북받쳐 올랐습니다. 저마다 살아오고 살아낸 인생 이야기가 진실하고 소박하여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도 남문동 어르신들에게 글을 쓰게 하고 싶어 꾀를 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상품으로 공책을 한 권씩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르신들은 노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부르면 손뼉은 쳐도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부끄러움을 타시는 거였습니다. 그렇지만 노트는 갖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트를 한 권씩 나눠 드리며 말씀드렸습니다.  

‘매일 같이 생각나는 거 다 쓰세요. 그림을 그려도 됩니다.’ ‘선생님이 읽으면 창피하잖유?’ 할머니 한 분이 매일 쓰기는 할 건데 나에게 보여 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기는 누구든지 싫습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읽기 위해 쓰는 게 일기이기도 합니다. 나는 남보다 더 무서운 독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일기를 쓰는 것은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미운 일 고운 일 가리지 않고 내가 겪은 것들은 다 인생 안에서 공부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나라고 부끄러운 거, 화나는 거 없나요?’ 하고 말씀드리자 ‘맞아! 화병 없는 사람은 없어!’ 하고 할머니 한 분이 맞장구를 치셨습니다.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지셨습니다. 서로 내놓고, 펼쳐 놓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속을 끓인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서로 내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친구가 되고 상처를 보듬게 됩니다. 

어르신들이 뭐라고 쓰실지, 뭐라고 일기장에 털어놓으실지 기대가 됩니다. 아마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나 올 것만 같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어르신들의 이야기 그림」 활동은 홍성군도시재생지원센터의 도시재생주민참여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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