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기와 존중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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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하기와 존중받기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8.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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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통해 화제가 된 말이 추앙(推仰)이다. 추앙의 뜻은 사전적 의미로 ‘존중하다(Respcet)’로 해석된다. 드라마에서는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손석구와 김지원 배우의 갈급함과 공허함을 이 단어를 통해 잘 드러냈다. 그래서일까? 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추앙의 대상을 기대하고 열망하는 대화를 하는 경우들이 잦았던 것 같다.

H씨는 아내와 초등학생, 중학생 딸을 둔 남성이다. H씨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게임 경력은 40여 년 됐고,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도박은 15여 년 정도였다. 30세부터 시작된 게임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그로 인해 아내는 매일매일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졌고, 부부간의 갈등 상황은 빈번했으며, 큰딸은 H씨를 유령 취급하는 듯 무시하고 어떠한 교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 막내딸이 H씨에게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요청하고, 놀이도 함께 하기를 요구할 때 실날 같은 존재감을 느끼기도 했다.

H씨의 어린 시절은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일만 하는 착한 아버지,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생활했다. 집안은 항상 조용했다. 가끔씩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물건을 던지고 부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H씨와 어머니, 여동생은 그 상황이 익숙했다. 그 순간이 지나면 아버지는 아무런 일 없었던 것처럼 일만 했고, 어머니도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정성껏 요리를 하셔서 밥상을 차려주셨다. 그래서인지 H씨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 본 적이 없었고, 타인의 감정에도 관심이 없었다. 다만 관계 유지를 위해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했을 뿐이다. 학창시절, 무미한 일상에서 즐거움 준 것은 친구들과 하는 짤짤이(주먹에 동전을 넣고 하는 노름)이었다. H씨는 항상 이겼다. 이러한 사교성 도박(social gambling)은 성인이 되면서 병적 도박으로 이어졌고, 30세 부터 게임 장사꾼이 되는 계기가 됐다.

의사소통(Communication)은 사람들이 서로의 메시지를 교환할 때 사용되는 상호작용으로,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포함된다. 경험주의 가족치료사인 사티어는 자아존중감이 위협받을 때 자기를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회유형, 비난형, 초이성형, 산만형으로 대처한다고 봤다. 회유형(Placating)은 자신의 내적 감정이나 생각을 무시하고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성향인 반면 타인에 대한 섬세한 돌봄과 민감한 정서가 자원이다. 비난형(Blaming)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비난하고 통제하는 반면, 자기 주장과 지도력이 있는 성향이다. 초이성형(Super-reasonable)은 자신과 타인을 무시하고 상황을 중시함으로써 논리를 중요시 하지만, 공감력이 부족하고 강박적인 생각으로 사람과 거리두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산만형(Irrelevant)은 주제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산만하게 행동하지만 유머로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성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H씨는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크게 표현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었다. 가족이나 주변에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요구받은 적도 거의 없었다. 단지 결혼 후 아내가 목석(木石)과 사는 것 같다고 불평했지만,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된 가정을 위해 상담을 받으면서 소통의 벙어리로 살아왔던 삶이 후회와 아쉬움으로 채워졌다. 그래서 상담 중 합의한 과제들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고, 그때마다 상담자로부터의 칭찬과 격려는 동기부여가 되어 변화의 촉진제가 됐다고 고백한다.

자아(self)가 약하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 자기의 내면을 모르면 타인의 내면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의 처한 상황으로 인해 가슴이 아프지만, 화가 나서 아픈 것인지, 폭식해서 아픈 것인지, 속이 상해서 아픈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는 생애 초기의 환경적인 경험이 고착되어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H씨는 48년 동안 걸어온 여정에서의 말(言)보다 10개월 동안 상담하면서 한 말(言)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상담 중 공감과 경청, 그리고 존중받는 경험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H씨는 날마다, 상담자가 자신에게 해줬던 격려와 지지처럼, 아내와 두 딸들에게도 조금씩 공감하고 지지하면서 관계를 하고 있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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