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차이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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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의 이해
  •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 승인 2022.09.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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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을 긴장시켰던 태풍 ‘힌남노’가 조용히 지나고 추석 명절에 대한 풍속도 많이 변한 뒷자락에서 광천노인대학에 ‘1960~1970년에 이런 때가 있었다’라는 유인물과 영상을 가지고 출근했다. 시간을 되돌리기에서 50~60년 전의 생활상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고 젊은 세대들이 보고 부모님의 세대를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호롱불 세대’는 90%가 전깃불이 없고 호롱불을 켜놓고 공부했다. ‘뒷간 세대’ 역시 90%는 실내 화장실이 없고 엄동설한 한겨울에도 뒤 구석이나 재래식 변소에서 볼 일을 봤다. ‘우물 세대’엔 상수도가 없어 동네 공동우물에 양동이로 물을 길어 항아리에 담아 놓고 써야 했다. ‘가마솥 세대’는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목욕을 했다. ‘손빨래 세대’엔 세탁기가 없어 개울에 나가 추운 겨울에도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했다. ‘보행·자전거 세대’엔 자가용이 없어 대부분은 걷거나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고무신 세대’는 구두나 운동화도 없고 흰 고무신보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까까중 세대’는 이발비용이 적게 드는 까까 중 머리를 했다. ‘보자기 세대’엔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나 어깨에에 메고 다녔다. ‘고무줄 세대’엔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없어서 여자애는 고무줄 넘기하고 사내아이는 새총을 만들었다. ‘강냉이 세대’는 쌀이나 보리쌀이 없어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 가루로 강냉이 빵, 꿀꿀이 죽을 만들어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주경야독 세대’로 낮에는 가사일, 농사일 돕기, 나무하기, 풀베기, 소먹이기, 동생 돌보기 등을 하고서 밤이 돼서야 학교숙제를 했다. ‘주판 세대’는 전자계산기나 컴퓨터는 없고 다섯 알짜리 주판을 굴리면서 셈을 했고 급수를 따야 은행 등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일제고사 세대’는 입학·졸업은 물론이고 전교생이 일제히 시험을 치르고 등수를 매기며 경쟁했다. ‘입학시험 세대’로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공돌이·공순이 세대’는 하도 가난해 진학하지 못하면 식모살이 아니면 구로공단 같은 공장에서 공돌이, 버스차장을 하면서 땀 흘려 일을 했다. ‘사글세 세대’로 신혼살림 집을 구할 돈이 없어 거의 대부분이 사글세 단칸방부터 시작해 전세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월남전 세대’로 나라가 빈곤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돈을 벌어와야만 했다. ‘광부·간호사 세대’로 빈곤 국가로 독일에 가서 석탄 광부와 환자를 돌보는 일로 돈을 벌어와야 했다. 마지막으로 ‘중동 노동자 세대’는 열사의 나라 중동지역에서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다.

이처럼 지난 세대들이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글을 읽었다. 한민족 반만년 역사의 뒤안길에서 1950년 6·25사변을 경험한 세대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와는 분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다만 부모님들의 어려웠던 삶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어르신들은 지난날의 역경을 극복해서 이룬 현실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을 조심스럽게 되새겨 본다.

오늘날 철없는 아이들은 부모들이 그 험난했던 ‘보릿고개’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 먹던 했다는 말에 “그럼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라는 말에 살며시 쓴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차제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생각나며 도둑을 뒤따르던 경찰이 “야! 너 거기 서”하는 말에 도둑이 “너 같으면 서겠니?”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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