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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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 받을 수 있다!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0.1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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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 필자의 칼럼 ‘우주개발시대와 고교평준화(홍주신문 2022년 8월 11일자 15면 게재)’에서 “사람의 능력에는 ‘차이(差異)’가 있는데, 그 차이를 무시하고 같게 취급하는 것은 바로 ‘차별(差別)’이다”라는 주장을 한 바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대법원이 ‘정년에 가까운 직원들을 상대로 연차별 임금피크제를 시행함에 있어서 불합리한 차별이 있었다’고 인정해 삭감됐던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한 사례를 살펴본다(대법원 2022.5.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처음으로 발의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같은 이름으로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진지한 논의를 하지도 못한 채 모두 폐기처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5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관련 입법 논의가 15년 만에 재개돼 진행 중이다. 

지난 2020년에 제안됐던 차별금지법의 제안이유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성적(性的) 지향성,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첨예한 관심과 쟁점이 되는 부분은 바로 ‘고용’ 분야의 차별이다.

이 법안도 ‘차별’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다”라는 전제가 달려 있다. 그렇지만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런 입증책임이 없이 그저 주장만 하면 되고, 그 상대방이 차별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법안이 만들어져 있어서, 입증책임에 관한 법 조문 자체가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 제3의 성(性) 문제, 장애 문제 등을 포함해 현시점에서는 매우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당분간은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법률체계상 헌법에는 평등권이 선언돼 있고, 평등권의 이념에 따라 ‘남녀고용평등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청소년기본법’ 등등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법률들이 잘 마련돼 있다. 따라서 별도로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의 법률을 따로 제정해야 하는 지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할 뿐만 아니라, 만약에 이 법률을 제정한다면 이는 옥상옥이 되거나 기업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활동과 국민의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전제정치의 도구, 또는 특정 이념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현재도 나이를 기준으로 해 고용에 차별을 두는 것을 금지하는 특별법으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고령자 고용법)’이 있다. 이 법 제4조의4 제1항은 ‘모집, 채용, 임금, 퇴직… 등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 외의 기준을 적용해 특정 연령집단에 특히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연령차별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에 적시한 판결에서 대법원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 고용법 제4조의4는 강행규정이어서,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이른바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것은 차별이며, 그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이 판결의 대상이 된 사례는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원고)가 임금피크제에 해당되는 기간 중에도 젊은 근로자에 못지않은 성과를 올린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과 달성과 관계없이도 ‘노사간의 단체협약,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에서 위 고령자 고용법 조항에 위배되는 내용을 정한 것은 무효’로서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기간 동안에 삭감됐던 임금을 원고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이 위 판결에서 임금피크제에 해당한 근로자인 원고에게 부여된 업무의 목표 수준이나 내용이, 임금피크제에 해당하지 아니한 상대적으로 젊은 근로자들과 차이가 없었다는 점도 판결 이유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판결로 인해 임금피크제를 거쳐서 퇴직한 근로자가 기업을 상대로 삭감됐던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소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위 판결로 인해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기업이 유사한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으려 한다면, 근로자를 차별함에 있어서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인지, 그렇지 아니한 차별인지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한 연후에 취업규칙을 제정하거나, 근로계약을 체결하거나 또는 단체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차별’이란 외형상 대등한 별개의 객체에 대한 취급이나 대우를 달리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기업이 근로자를 상대함에 있어서 차별할 것은 냉엄하게 제대로 차별해야 하지만, 차별해서는 아니 되는 부분에서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

이상권 <변호사·전 국회의원·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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