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신년사] 민심을 널리, 많이, 깊이 보는 지혜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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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신년사] 민심을 널리, 많이, 깊이 보는 지혜의 해
  • 홍주일보
  • 승인 2023.01.05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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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새해인사

새 희망을 품고 벅찬 꿈을 기대하며 2023년 새해, 계묘년(癸卯年) ‘토끼띠 해’가 밝았습니다. 늘 그랬던 세월의 흐름처럼, 또 지나간 한 해를 과거로 묻어 버리며 지혜로운 새로운 해가 힘차게 솟아올랐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군민들과 출향 군민들을 비롯한 홍주신문 애독자의 가슴속에 가득하게 품은 소중하고 탐스러운 꿈들이 모두 이뤄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희원합니다.

지난 3년여 세월 동안 우리 모두에게는 코로나19로 순탄치 못했던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하고 바라던 버거웠던 기억과 어려움이 연속된 시간이었습니다. 잃어가는 희망의 끈을 겨우 붙잡고 주저앉지 않으려고 버티며 살아온 긴 세월입니다. 언제 모든 삶이 순조로웠던 적이 있었겠습니까마는 올해도 수많은 장벽이 앞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쉼 없이 밀려오는 파고를 헤치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삶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맞서 한 걸음 한 걸음 갈 길을 묵묵히 가야 할 것입니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시대, 비록 삶이 버겁더라도 툴툴 털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민심의 바다는 무섭다’고 외치지만 실상은 눈꼽 만큼도 민심의 바다에는 관심조차 없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 염증을 느끼며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마음과 각오를 새롭게 바꿔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변하고 시대가 바뀌며 우리들의 삶의 질이 변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시작됐고, 새로운 지방정부가 들어 선지도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기대를 해보기로 마음은 먹어보지만 그렇게 큰 희망을 걸기가 아직은 그렇습니다. 여전히 많은 지역의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은 매일매일 자신들은 물을 마시면서도 정작 ‘민심의 바다’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법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시 선거가 있으면, 선거결과에 대해서는 늘상 “민심의 바다가 무섭다”는 말을 합니다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진정으로 ‘영혼이 없는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정치인의 한마디는 그렇게 보아도 무방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마음을 다져 먹어야 내년에 실시되는 선거에서 ‘민심의 바다가 무섭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민심’의 결과와 변화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정치권, 정치인들이 민심의 바다를 외면한 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자들과 강성지지자들일 것입니다. 늘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당파적 싸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싸움의 콘텐츠가 너무 사소하고 몰상식하고 저급한 게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지금 당장 유불리의 얄팍한 계산만 있을 뿐, 멀리 내다보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내로남불’은 정치인들이 인성이 나빠서 그런 것 만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공격할 건수만 생겼다하면 폭격을 퍼붓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과장과 왜곡은 기본이고 가짜뉴스까지 만들어 냅니다. 법을 만든다고 큰소리치면서 절대 책임지는 법은 없습니다. 부도덕하고 기만적인 공격을 할수록 자기 진영에서는 더 큰 박수를 받으며, 후원금도 더 많이 쏟아지고 차기 공천 가능성도 훨씬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싸움이 벌어지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 크게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의 삶과 미래를 생각하는 상상력 경쟁을 하면 좋겠건만 그런 법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적을 공격하는 데에 좀 더 자극적이고 독한 언어를 구사할 것인가? 이걸 고민하는데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예로부터 귀가 밝고(총·聰), 눈이 밝은(명·明) 사람을 통칭해 ‘총명하다’고 했습니다. 눈이 밝다고 하는 것은 시력 외에 사물을 읽는 눈이 밝다는 뜻도 됩니다. 눈은 그렇듯 대개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잘 보이는 부분과 안 보이는 부분이 바뀌는 것이 시력의 문제라면, 세상을 읽는 눈의 변화는 시각 또는 시야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둘은 많이 닮았습니다. 새해 홍주일보·홍주신문은 보다 널리, 멀리, 깊이, 많이 보는 지혜의 시야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여러분과 동행할 것입니다. 세상을 읽는 눈을 뜨는 시기는 대개 대학 시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취직을 하고 나이를 들어가면서 대다수는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읽는 눈으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우리 사회는 그런 통례가 잘 먹히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흔히 40대 진보, 20~30대 보수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사회는 드물 것입니다.

새해 벽두에 쏟아져 나온 정치권의 신년사, 언론사의 신년특집이 2023년의 한국 사회, 우리의 현실사회를 진단하면서 공통적으로 쓴 단어는 ‘갈등’과 ‘화합’일 것입니다. 분출하고 있는 이념·세대·지역·노사·빈부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과 화합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당위에 이론을 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념 갈등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정치판은 통합과 화합은커녕 이념 갈등이 더 격화되는 모양새입니다. 여야 대립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념대결은 변함없이 노골적으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마치 접점이 사라진 채 물리적으로 맞부딪치는 양상입니다. 우리 사회의 전반이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해방 이후 진행된 한국 현대사의 산물이라면, 해방 80년을 바라보는 연륜이 쌓인 대한민국은 나이만큼 성숙해질 때도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최근 각종 사회여론조사에서 중도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입니다. 중도란 진보와 보수의 물리적·산술적으로 중간 지점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진보의 주장에도, 보수의 주장에도 귀를 활짝 열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충분히 돼 있는 층일 것입니다. 서로가 큰 틀에서 공감한다면 지엽적인 사안에서 매번 맞설 필요가 과연 있을까.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난 한 해 동안 홍주일보·홍주신문을 아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올해에도 홍주일보·홍주신문에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 성원을 당부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도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거듭 희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묘년 새해아침
홍주일보·홍주신문 발행인 한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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