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의미 있는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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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의미 있는 소재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3.06.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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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35〉
이춘상  〈우리집〉 36×26㎝  수성싸인펜.

그 어르신을 처음 뵈었을 때는 매우 활발하고 활기에 차 있으셨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계셨지만 총기 어린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언어와 몸짓으로 내 이야기에 전폭적인 지지와 반응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리모컨의 부재로 계획했던 영상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르신이 내게로 다가와 당신의 전화기를 펼쳐 보여주셨습니다. 최신식 접이식 스마트폰이어서 직접 사셨냐? 고 여쭈어 보았는데 “아들딸들이 사줬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의 전화기 속에는 자녀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은 물론 어르신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사진, 어르신이 직접 그린 그림과 직접 만드셨다는 음식 사진, 알뜰살뜰 가꾸어 놓은 집 사진 등이 정리되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림 그리기 활동도 주도하실 것 같은 믿음이 가는 어르신이었습니다.   

기대했던 그 어르신은 마을회관에 나와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나오시지 않아 기대를 접게 되었는데 어느 날 나오셔서 채색도구를 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초롱초롱하던 눈이 움푹 파이고 목소리도 첫날처럼 힘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심히  편찮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의 그림은 내 예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꼼꼼하고 단정하게 그리셨습니다. 집과 하늘, 꽃과 구름을 그리시고 시집올 때 가져오셨다는 장롱과 가구, 이불, 그릇 등을 그리셨습니다. 어르신에게 의미 있는 소재를 찾아 그리셨는데 그래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문인화와 같은 전통화를 그리셨던 것 같았습니다. 그림의 색채나 기법이 전통화를 닮아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그림은 솜씨가 좋은 그림보다는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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