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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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언어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01.24 15: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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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언향(書花言香·글은 꽃이고 말은 향기다), 누구의 책에서 인용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구절이다. 그러나 글을 꽃처럼, 말을 향기롭게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내공을 요구한다. 부부싸움뿐만 아니라 세상사 많은 일들의 밑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소한 말에서 다툼이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언어가 말하는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남겼다. 언어 이외에 자신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을 공격하기 위한 독한 말이나, 적절하지 못한 말, 무심코 던진 말로 타인의 가슴을 아프게 할 때 그것은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나에게 설화(舌禍)를 남긴다. 그래서 타인은 항상 나의 언어를 바라보고 있는 신의 대리자인지도 모른다. 어느 수도원에 "침묵보다 나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표어를 붙여 놓았더니 말을 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조금 비틀어보면, 말할 필요가 없을 때 침묵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은 시인이 좋은 시를 생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적확(的確)한 언어를 쓰려는 고통은 원고지 앞에 앉아 있을 때 절절하다. 참신한 언어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원고지는 공포로 다가온다. 몇 줄의 일기도 써내려가기가 때로는 버겁지 않은가? 미국의 저명한 문학비평가 해롤드 블름은, '강한 시인'(strong poet)이 되기 위해서, 선배 시인들의 지적 전통을 습득하고 그 위에 나만의 시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시적 영향의 불안'속에, 시인들이 살아간다고 말한바 있다. 선배시인의 그늘을 벗어나야 강한 시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시인의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강한 시인의 시적 표현은 아직 남들이 사용하지 않은 '낮설은' 것이어야 한다. 진부한 표현과 생경(生硬)한 언어는 시적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마되지 않은 언어의 남발은 작은 망치를 사용할 때 큰 해머를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필요에 따라 알맞은 공구를 사용하여 고장 난 물건을 척척 고치는 장인( 匠人)의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아름답다.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의 공구 사용법을 오랫동안 익히고, 나만의 공구도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야 한다. 나의 언어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때 그는 비로소 시인의 지위를 얻는다. 시 쓰는 과정이 고통스러워 남의 표현을 슬쩍슬쩍 가져올 때, 타인이 사용한 주제를 여과 없이 그대로 차용할 때, 시적변용(詩的變容) 없이 진부한 표현을 사용할 때, 그는 시인의 자리를 잃는다. 시인이 언어를 벼스리는 대장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詩人이 아니라 時人이 된다. 대장간의 뜨거운 신산(辛酸) 속에서 시인의 언어는 탄생한다. 가끔 몇몇 대학교수들이 논문을 표절하여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곤궁한 시인이 앞선 유명 시인의 표현을 자기 시에 도용(盜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창조적 글쓰기는 시인(창조적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다. 일상적 언어와 이미 신선함이 사라진 언어로 쓰여 진 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강한 시인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인은 먼저 끊임없는 언어의 조탁(彫琢)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단어가 문장을 만들고 문장이 단락을 이루어 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강한 시인이 되는 일은, 앞선 시인들의 시 세계를 뛰어넘어 그들의 표현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일이다. 즉, 우리는 모두 세상사를 배워가며 새로운 언어를 벼스리는 시인이다. 개구리처럼, 개굴개굴 반복하는 일상의 언어에서 벗어나 멋진 말, 좋은 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서양의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야한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이 말이 반복되는 이유는 고전(古典)에 문자언어의 진수(眞髓)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훌륭한 고전은 인류가 고뇌한 훌륭한 지적 표현의 선물이다. 이러한 표현들이 내재화 된 사람들은 글을 쓸 때 뿐만 아니라 말 할 때도 문자를 쓰는 것처럼 말한다고 월터 J,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밝히고 있다. 출판된 문자언어에 인류의 고뇌가 들어있고 세련된 표현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일상 언어로는 새로운 세계를 묘사할 수가 없다. 엄마 아빠 그리고 이웃의 개굴개굴 소리만 들은 개구리는 똑 같은 소리로 엄마 아빠, 이웃을 흉내 낼 뿐이다.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TA)의 창안자이자 정신의학자였던 에릭 번은 사람은 누구나 왕자와 공주로 태어나지만 그들의 부모가 입을 맞추어 부모와 비슷한 개구리로 변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개구리에서 벗어나, 글을 꽃처럼 말을 향기롭게(書花言香)사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타고난 사람이라도 글 잘 쓰는 법을 하루아침에 익힐 수 없다"는 장자크 루소의 오래된 이 말은 아직도 지당한 말씀으로 들린다. 말과 글을 훈련하지 않고서는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빚, 글 빚 적게 남겨놓는 일은 도 닦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언어가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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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정 2013-01-30 07:59:54
어느날 부터 사용하는 언어가 나도 놀라게 점점 더 격해지고 있음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새해의 첫 글 시인의 언어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입니다.
서화언향이 쉽지 않지만 마음속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 조금은 노력을 할 것 같습니다.
말을 향기롭게 하면 내 삶이 향기로워 질것 같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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