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운동/건물/멸실/사적 미지정/광천읍 상정리 281】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의 항일독립운동 현장인 사적지를 탐사, 항일독립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활용하기 위한 발굴·기록·교육·홍보 등을 통해 정신적 유산을 계승,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조명되도록 항일독립유산의 사적·기념물 지정 등의 촉구를 위해 ‘우리 고장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알기’를 통한 지역공동체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적지명/분류/종류/상태/사적지지정/주소】순 <편집자 주>

홍성군 광천읍 충서로 453번길 142-15(상정리 281)는 홍주의병과 광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서승태가 설립한 사립 덕명학교가 있던 터다.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 281번지 덕정부락에 있던 덕명학교 건물은 1980년대까지 건물의 일부가 남아있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빈집으로 남아있으며 그 자리가 과거에 ‘덕명학교 터’였다는 안내판도 하나 없다.
덕명학교는 1907년 홍성지역의 독립운동가인 서승태(徐承台, 1854~1921)가 1908년 ‘사립학교령’이 공포되면서 광천 상정리 덕정마을에 설립한 ‘사립 덕명학교’로, 지금은 폐교된 ‘덕명초등학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당시에는 서승태의 교육열이 널리 퍼지면서 면민 전체가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사례가 당시 기호흥학회홍성지부에 의해 본 학회에 보고되면서 ‘황성신문’ 1909년 3월 9일 자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1910년 7월 제1회 졸업식에서는 서흥모를 비롯한 8명의 졸업생이 졸업했다. 이후 학생이 늘어나자 서승태는 남은 전 재산을 투자하며 1911년 2월, 광천 신진리에 시설을 대폭 확대해 학교를 신축·이전해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사립 덕명학교는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제1차 조선교육령에 의거 1915년 11월 3일 광천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됐다.
서승태 사후(死後) 후진들이 ‘투철한 교육관과 흥학공적(興學功籍)을 기리기 위해 학부모와 제자, 지역유지들이 뜻을 모아 1935년 11월 학교 교정에 ‘흥학기념비(興學記念碑)’를 건립했고, 이곳이 개교 100년이 지나 폐교된 광천 신진리의 ‘덕명초등학교’ 자리다.
서승태는 1906년 민종식(閔宗植) 의병장이 의병을 이끌고 남포(藍浦)에서 홍주성(洪州城)을 향해 행진할 때 군량미를 제공하는 등 의병을 지원했다. 1907년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덕명학교(德明學校)를 설립했으며, 홍성지역 근대교육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다.
서승태는 1919년 3월 18일 홍성군 광천면에서 오인섭(吳仁燮)·이명종(李鳴鍾)·최응모(崔應模)·성인배(成仁培)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 500여 매를 등사해 주민들에게 배부하는 등 시위준비를 위해 활동하다가 사전에 발각돼 일제 경찰에 피체되기도 했다.
1989년 발행된 ‘홍양사’기록에 의하면 광천공립보통학교는 1915년 서승태가 경영하던 사립 덕명학교를 계승해 개교했다.

현재 덕명학교 터의 거주자와 지역 주민들로부터 덕명학교 터였다는 사실을 고증받은 ‘독립운동 사적지’다. 하지만 홍성군에서는 독립운동 사적지와 관련된 안내판이나 표지석, 사적지 지정 관련 조례 제정 등의 움직임은 아직 없는 상태다.
덕명학교를 계승한 광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1930년 2월18일 일제식민지교육에 대항해 동맹휴학을 단행하기도 했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1935년에 세워진 서승태 흥학기념비가 현재 폐교돼 ‘덕명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덕명초등학교 교정(일농관 앞)에 세워져 있어 광천공립보통학교 터와 함께 역사·교육의 현장 등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의 확인은 ‘기호흥학회월보’ 1908년 3월의 ‘회중기사’와 동아일보 1926년 5월 5일자 2면 9단에 ‘광천공보맹휴해결(廣川公普盟休解決’이란 제목으로 다뤘으며, 동아일보 1935년 11월 9일자 5면 5단에 ‘서승태씨 여학기념비(徐承台氏 興學記念碑“란 제목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립기념관이 2007~2010년 실시한 독립운동 사적지 중 한 곳인 ‘덕명학교 터’도 현충시설 지정은커녕 알림판이나 표지석조차 설치되지 않은 채 보존·관리에 소홀한 사적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