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로 해법찾는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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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로 해법찾는 도시재생
  • 홍주일보
  • 승인 2013.11.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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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발리문 사람들의 갈등소통 대화

 

▲ 발리문의 도시재생 과정이 '주민참여'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설명하는 지역재생공사(BRL) 사람들. 그러나 사업 지연 과정에서 시와 BRL이 갈등을 빚었고,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듣기만 했지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취재진과 주민들의 간담회 모습.


공동체 만족하는 그림같은 집… 주민참여가 관건 

발리문 도시재생 시와 공사 갈등  "주민 의견 듣기만 하고 반영안해"
15년 경제위기 철거지연 등 악재  공사 해산뒤 주민 커뮤니티 기대 


"1975년부터 40여년 정도 이 지역에 살았다. 지금은 철거 대상인 타워 블럭(15층 고층아파트)이 세워질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입주 자격조건이 있었다. 직업이 있어야하고 전과가 없어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곳이 낙후되면서 좀더 나은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직장이 없는 사람들만 남게 됐다."

발리문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주민 마이클(Michael)씨의 이야기다. 15년 동안의 도시재생 사업이 마무리되고 있는 발리문. 낡은 임대아파트를 떠나 추가 비용없이 새 주택으로 옮기게 된 발리문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도시재생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공동기획취재단은 더블린시의회와 지역재생공사의 주선으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주민들은 비판적인 시각에서 지난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주민과의 대화를 위해 커뮤니티를 전담하고 있는 지역재생공사의 공무원 브라이언(Brian)과 60년을 이곳에서 산 캐시(Cathy)와 마이클(Michael), 커뮤니티 가든을 운영하고 있는 조(Joe), 드니스(Denis), 리프(Riff)씨 등이 함께 했다. 1970년대 초기 임대아파트는 당시만 해도 매우 좋은 집들이었다고. 마이클은 "침실이 1,2,3개짜리 집들이었는데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쓰지 않는 온돌로 빨래를 하면 5분 만에 말라서 신기해하고, 친구들이 목욕을 하러 놀러오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마이클씨는 6년전 도시재생 사업으로 지어진 방두개짜리 복층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마이클씨는 "중앙난방식으로 새로 지어진 집에 만족한다. 공원이나 놀이터가 주변에 있어 손자 손녀들도 좋아한다"며 "그러나 가스비가 예전에는 임대료에 포함되어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은 따로 나와 고민"이라고 말했다. 15층 아파트에 살 때는 몰랐던 동네의 문제도 잘 보인다. 마약을 하는 청소년이나 기물을 파손하는 모습도 눈에 띄어 이웃들과 그런 고민을 나누게 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지역재생공사가 주민들의 의견을 많이 듣기 위해 노력한 건 사실이다. 부엌을 어떻게 만들까를 묻기도하고, 커뮤니티를 고민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동네 90가구 중 절반 정도가 이주를 거부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지긋지긋한 이웃을 다시 만나기 싫다는 것부터 원하는 집으로 옮겨가지 못한다는 것까지. 그러다보니 계획과 달리 진행이 늦어졌다. 철거가 늦어지니 새 집 건설도 늦어졌다. 재생공사나 시가 그런 것을 왜 예측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업이나 도시개발도 100% 주민의견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발리문에서도 지역재생공사와 시, 주민들간의 갈등은 없지 않았다. 주민들은 지역재생공사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최종 결정에는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978년 델파스트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주민 캐시씨<사진>는 이주 과정의 사연을 소개했다. 캐시씨가 6살이었던 당시 캐시씨의 가족들은 집이 없었다. 발리문의 빈집 한 곳을 무단으로 점거한 캐시씨는 그곳에서 1년을 살았다. 결국 경찰이 와서 내쫓겼는데 당시는 불법 이주자들에게 발리문에서 새집을 한 채씩 주었다.
"그 후 발리문에서 살게 됐는데 따뜻한 이웃들이 너무 좋았다. 상점이나 기본적인 시설도 없어서 불편했다. 버스 정거장 근처의 상점이 그나마 편의시설이었다. 상점에서는 장부에 이름을 적고 외상거래를 하기도 했다. 지역 상점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캐시씨가 원래 살고 있던 곳은 시빅센터 뒤에 있었는데 철거가 되기 전에 극장, 학생 기숙사가 먼저 지어지고, 큰 건물이 먼저 하나씩 들어왔다. "처음 기본계획이 나올 때는 흥분되고 좋았다. 그런데 주민들에게 설명도 없이 일조권을 가리는 큰 건물들이 들어서자 우리는 화도 나고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가서 놀던 놀이터도 허물어지고 했다." 발리문의 전체 8만여명 중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200명 정도라고. 주민 커뮤니티를 담당한 브라이언씨에게 도시재생 사업이 초기부터 주민참여적으로 진행됐어야한다고 보는지를 물었다. "발리문 지역재생 프로젝트는 중앙정부가 자금을 대고, 시에서 땅을 제공했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 마스터 플랜을 짤 때는 커뮤니티가 잘 됐다. 뉴스레터를 통한 소통도 원활했지만 중간에 사업이 지연되면서 지역재생공사와 커뮤니티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고 소통의 책임도 떠넘겼다. 지역재생공사 안에 커뮤니티 활동가가 너무 없었다."

브라이언은 초기 데이터만 가지고 집을 지어, 처음 가족 구성이 부부와 아이 둘이었는데 20년 후에는 아이가 22살이 된다는 걸 예측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프로젝트를 전체적으로 건축가, 계획가들이 주도하면서 '눈에 띠게 아름다운 지역'을 만드는 곳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브라이언은 "발리문의 가장 큰 문제는 집을 포기하고 빈집이 생기고 남아있는 곳의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다. '빨리 빨리' 이주정책을 썼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이사를 가지 않았다"며 "사람들은 모두 개인의 삶이 있었는데 도시재생 단계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발리문은 저소득층의 획기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막대한 예산 투자와 아일랜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지역재생공사의 열정 덕분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5년이란 긴 시간동안 과정 중에 겪게 된 경제위기, 주민 반발로 인한 철거 지연, 지반변화에 따른 문제 등 어려움이 있었고, 그로 인해 시와 지역재생공사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국내에 소개된 것처럼 '주민참여기반'에 따른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시와 지역재생공사는 끊임없는 의견수렴과 참여의 기회를 마련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참여와 소통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이제 지역재생공사가 떠난 빈 자리는 주민 커뮤니티와 민관 거버너스 영역이 채워가게 될 것이다.
아일랜드 더블린=김진이 박상범 김혜동 기자 /사진=육성준 기자 취재지원=사회투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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