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 문신(文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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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문신(文身)
  • 윤여문<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4.04.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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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정렬된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적 기준에 숨이 막힐 때가 있다. 필자의 전공이 작곡이다 보니 자유로운 작품을 창작하려는 의도와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상식이 서로 상충되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 내가 포함된 사회적 선입견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을 잉태하려는 창작 본능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은 어찌 보면 필연이구나 싶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유일한 반격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왔던 음악적 구조나 형식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것으로 나의 소심한 반항은 피력된다.
오래전부터 왼쪽 등에 어른 손바닥 크기의 멋진 문신 하나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러한 ‘소심한 반항’의 한 표현이다. ‘소심한 반항’ 이외에 문신의 가장 큰 매력은 ‘영원하다’는 것과 ‘거칠다’, 혹은 ‘틀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부에 상처를 내고 물감을 들여 글씨나 그림, 또는 무늬 등을 새기는 이 고통스러운 행위에 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빈티지 청바지와 빛바랜 낡은 티셔츠에 보일 듯 말 듯 한 문신은 심지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문신을 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몸을 예술적 영감의 표현 매체로 삼아 내가 추구하는 세계나 미적 감각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물론 주변에서 “나중에 후회한다”거나 “대중 사우나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해 낼 수 있냐”는 은근한 경고에 주저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부모에게 받은 몸을 온전히 보호하지 않고 문신을 새긴다는 것은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신은 죄의 대가로 새기는 형벌로써 인식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요즈음 자유로운 세대들이 주장하는 미적 기능으로서의 문신은 기성사회에 대한 불온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을 필연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형식으로 인식하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와의 불편한 감정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중년 여성이 처진 눈을 보정하기 위하여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것이나 어린 아이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과 문신의 차이는 무엇일까.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거나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성형수술이나 노란 머리를 보고 누구도 문신에 대한 선입견 즉, 사회부적응자, 미개함, 조폭, 또는 형벌이란 단어를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문신에 대한 선입견은 다소 억울하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가 차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있다. ‘옳음’과 ‘그름’ 또는 ‘선’과 ‘악’을 다수의 대중은 자신과의 유사성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는 왜곡된 이분법적 논리에 우리 사회의 소수는 외면 받아 왔다. 근현대의 한국사회에서 왼손잡이는 놀림의 대상이었고 얼마 전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했던 한 연예인은 한동안 방송국에서 퇴출대상이 되기도 했다. 소수를 향한 다수의 사회적 폭력은 결국 사회적인 선입견,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으로 변질되어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다’거나 ‘중국인은 지저분하다’거나 ‘남자가 여자보다 운전을 잘 한다’라는 식의 사회적 고정관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는 왼손잡이, 동성애자, 문신자 등으로 대표되는 소수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을 비정상인 혹은 열등한 존재라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모두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나는 문신이라는 행위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단지 흑과 백의 논리가 아닌 나와 다른 이들과 함께 삶을 영위하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구한말의 유교적 사상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는 것에 큰 미련이 없다면 거추장스러운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여하튼 멋진 문신 하나쯤은 꼭 가지고 싶다. 늙어서 살이 늘어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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