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발자취를 찾아서] ④ 남한산성에 우뚝 선 ‘만해 정신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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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발자취를 찾아서] ④ 남한산성에 우뚝 선 ‘만해 정신의 산실’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4.04.2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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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만해기념관

 


1998년 5월 성북동서 이전 개관 유품·학술지 등 총 600여점 전시
각종 기획전·다양한 체험 진행 만해학교 운영등 선양사업 활발


경기도 광주시와 성남시를 가로지르는 남한산성 한 기슭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은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를 기념하는 사립박물관이다.
만해 한용운 연구에 몰두해온 전보삼 교수가 1981년 10월에 설립했다.
만해기념관은 대지 120평, 연건평 120평에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을 갖추고 있으며 건물 안에는 기획 전시실, 교육관, 자료실 등이 있다. 전통 한옥에 현대적인 스타일을 가미한 건축 양식이 인상적이다.
기념관 내에 들어서면 ‘나룻배와 행인’의 시구가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는 조각가 민복진의 작품 ‘만해의 흉상’이 보인다. 기념관 내부에는 만해가 평소 즐겨 보았던 수택본들과 ‘님의 침묵’ 초간본 및 100여종의 판본, 만해 관련 한술 논문 600편이 소장돼 있다.
아울러 만해의 유품을 비롯해 편지글, 유묵, 저술 등 원전자료와 각종 연구자료 등 전 교수가 수집한 600여 점의 만해 관련 자료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만해의 항일 투쟁과 문학 활동, 일생, 구한말 불교계의 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심우장 모형 등이 함께 전시되고 있으며 2층은 영상자료실, 서고, 회의실, 강의실 등 만해 사상을 선양하기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해 기념관은 1981년 10월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만해 생가에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1998년 5월 지금의 남한산성으로 이전 개관했고 2002년 3월에 문화관광부에 등록, 사립박물관 제244호로 지정됐다.
전 관장이 만해기념관 건립을 발원하게 된 것은 지난 1988년 독립기념관에서 만해 스님을 주제로 열렸던 제1회 특별기획전을 후원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자신이 빌려 줬던 자료들을 위주로 이루어졌던 특별기획전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것을 확인한 전 관장이 상설 전시관을 세워 만해 스님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야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전 관장은 1989년부터 현 만해기념관 부지 옆 주택을 빌려 임시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본격적으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건립허가에만 3년여가 걸릴 정도로 많은 난관이 가로막고 있었다. 결국 진입로를 확보하고 하천을 복개하는 조건으로 지난해 7월 허가를 받아냈지만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결국 자택을 처분해 마련한 돈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부지 매입과 공사에 들어가는 자금 10억여 원을 혼자 힘으로 마련해야 했다.

 

 

 


“남한산성이 만해 한용운과는 직접 적인 연관이 없는 곳이기에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왜 기념관을 건립했는지에 많은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건립하는 것이 향후 운영이나 만해를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 생각했고 건립 당시 서울 외각에 새로운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었던 남한산성을 택하게 됐습니다.”
만해기념관은 완공한 후 일반인들을 상대로 주말을 이용한 1박2일 일정의 ‘만해학교’를 운영하는 등 만해사상 선양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들을 추진하며 만해 관련 대표적인 교육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좌는 물론 각종 세미나와 토론을 곁들여 만해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정원에는 어록비와 시비, 건립기념비 등이 세워져 만해사상을 선양하는 중심도량으로 주목 받고 있다.
또 ‘토박이’라 해서 ‘토요일에 박물관에서 배우는 이로운 교육’이라는 취지로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 어린이 및 청소년 가족을 대상으로 ‘님의 침묵’ 시집 만들기 ‘차 예절 배우기’ 등의 다양한 체험 행사도 함께하고 있다. 무엇보다 만해기념관이 불교나 문학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계절마다 열리는 각종 기획전과 특별전 때문이다. 50여 년 간 만해 연구에 몰두해 온 전 관장과 3명의 전문 큐레이터가 준비하는 기획전들은 전에 없던 풍부한 자료와 해설로 연구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기념관 건립과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외국의 개인 기념관을 둘러보기도 했다는 전 교수는 “만해 기념관을 만해 사상을 선양하는 중심도량으로 가꿔 감은 물론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문화적, 사상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만해기념사업회, 전문성 갖추는 게 숙제”

인터뷰 전보삼 만해기념관장

 

 

 

 

- 홍성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결성면 만해문학체험관을 조성할 당시부터 자문역할을 했기 때문에 홍성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물론 홍성이 만해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관련 기록들을 찾기 위해 수십 차례 홍성을 방문했었고 마을 원로들로부터 조언도 많이 들었다.”
- 호칭에 대한 논란이 있다. ‘선사’와 ‘선생’ 어느 것이 맞나.
“1980년 초반에 조계종 젊은 승려들이 만해를 선생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잠시 주장을 했었다가 1990년대에 들어 다시 선사로 통일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선사와 선생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미 ‘선사’로 통일해야 한다는 불교계의 입장이 정해졌기에 ‘선사’로 불러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만해기념사업회 출범에 앞서 조언 한 말씀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서거 70주기를 맞이해 대대적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구성을 한다 하더라도 기념사업회의 역할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다이내믹한 프로그램과 활동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해의 전반적인 삶과 업적에 대해 능통한 전문가들이 기념사업회에 포함돼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념사업회라는 것이 일반 상식선에서 사업을 추진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홍성군에서 기념사업회가 꾸려진다면 좋겠다.”
- 만해 관련 교육의 지향점은
“요즘 시대에는 창의와 인성, 이 두가지 측면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만해의 문학작품을 통해 창의성을 기를 수 있고 독립운동과 관련해선 인성교육에 좋은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홍성에서는 만해를 주제로 축제를 열고 있는데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만해의 사상과 업적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면 좋겠다. 만해기념관에서도 ‘만해 어록 부채 만들기’ 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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