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취락 구조를 보면 대개 북서풍을 막아 주는 야산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가운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어느 곳에가 보아도 익숙한 풍경이다.
마을에는 우물을 중심으로 집을 짓고 우물가는 사람이 늘 모이며 동네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도 전통적인 자연취락으로 공동 우물을 각기 하나씩 끼고 윗말, 아랫말, 양지말 세 군데로 나뉘어 살고 있었다.
아침 먹고 아이들이 몇 명만 모이면 올라갔던 산이며, 여름날 더위에 못 견디어 헤엄치던 앞개울, 그 놀이판이 유정한 곳이기도 하여 일기장 속에 아직도 살아있다. 찔레 순이나 진달래 꽃 잎을 따러 또는 도토리를 주우려 철마다 나무 그늘을 헤집고 다닌 나로서 산에 대한 감각은 남다르지만 바다만큼 세련되거나 감상적이지는 않았다.
누구는 산이 풍요로워 바다보다 좋다고 하지만 나는 드넓은 바다가 더 좋다.
하얗게 파도치는 푸른 바다소리를 듣고 있으면 생명의 충동과 함께 면면히 이어지는 유구한 자연의 막힘없는 무한 앞에 신비감마저 느낀다.
지난여름 나를 빙자해 배를 타고 섬에 가고 싶다고 자기 신랑에게 투정을 했다는 내 친구는 신랑 왈, 방 안에 물을 가득 채우고 돌을 띄워 줄테니 실컷 놀라고 했다니 농담치고는 지나친 것 같다.
그래도 우리 그이는 바다 보고 싶다면 대청 댐 정도는 데려가주니 그 심성이 곱게 보인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신랑 뒤에 꽉 붙어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엄청나게 상쾌하다.
“발만 올려 놓고 입만 놀리면 목적지에 도착하니 얼마나 편해? 나도 한번 여자 뒤에 매 달려가 봤으면 좋겠네.” 하며 투정하는 신랑을 상긋한 미소로 답하며 대청 댐 가는 길에는 만개한 개나리가 들러리해 주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상당산성에 들렀다.
그 많은 돌은 운반하여 저 높고 넓은 성을 쌓는데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을 소모했을까 생각하며 선조들의 피와 땀의 고귀함을 느낀다.
산이며, 바다며, 호수며, 영원한 자연의 연장선 속에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함을 깨닫는다. 그러기에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작품의 결과를 생가하지 않고 순수한 열정에 빠져있는 예술가가 행복하듯 말없는 자연의 품이 편안하다.
허영옥(홍성도서관 청하글쓰기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