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기, 제향에 올리고 뇌물로 쓰인 고급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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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기, 제향에 올리고 뇌물로 쓰인 고급식품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5.01.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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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산업과 지역경제<3>

 

▲ 제주마목장은 고려시대 몽골이 현재의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일대에 탐라목장을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사진은 제주마필농가의 현재 말 사육장 모습.

전국적으로 말산업에 대한 관심 높아져
제주는 고려시대부터 목마장으로 유명


지난해에는 말의 해를 맞아 제주특별자치도가 ‘말산업 특구’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으로 말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말은 경마 등 레저스포츠를 넘어 관광, 향장품 산업 등으로 산업적 가능성을 넓혀가는 추세다. 최근에는 말고기가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식용과 건강보조식품 개발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대표적인 융·복합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산업 특구’로 지정받은 제주는 과거부터 목축문화가 일찍부터 발달된 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제주는 원(元)지배기 김통정 장군이 이끄는 삼별초의 입도는 목축뿐만 아니라 제주 역사의 흐름까지도 바꿔놓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원종 14년(1273) 삼별초가 여몽연합군에 의해 평정된 후 원은 탐라를 고려와 분리시켜 직할로 탐라총관부와 목마장을 설치한다. 당시 원에서는 목호라는 목축전문가를 제주에 보내 목축기술을 전수케 했는데, 토착 제주민들도 목자 등의 역을 맡아 마필생산에 직접 관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원(元)·명(明) 교체기에 접어들 때 공민왕은 친명반원 정책을 펴는 동시에 제주를 돌려받기 위한 교섭을 추진한다.

제주는 원래대로 고려의 영유권으로 되돌리되 몽골의 묵호들은 양민으로 삼고 그들에 의해 키워졌던 말은 고려에서 관리하면서 진헌하겠다는 내용으로 협상을 했다. 명은 이를 받아들여 제주의 말을 진헌토록 했으나 제주에 있던 묵호들이 명나라에 자신들의 말을 바칠 수 없다면서 당시 관리 등 300여명을 살해하는 묵호의 난을 일으켰다. 따라서 공민왕은 1374년 최영 장군에게 대군 2만 6000여명을 주어 묵호들을 평정한 후 고려와 제주의 관리들로 하여금 제주의 축정을 관할토록 했다.

조선시대 제주의 목축실태를 살펴보면 원에 의해 세워진 목장 조직은 조선 태종 16년(1416)에 폐지되고 새로운 조직체계를 갖췄다. 제주의 중산간지역을 중심으로 10개소의 목장을 운영하면서 그 관리감독은 해당 관청의 현감이나 현령이 맡도록 했다. 자목장에는 암말 100필과 수말 15필을 배정하고 군두 1, 군부 2, 목자 4인을 배치하여 실질적인 생산에 종사케 했다. 또 암말 100필을 기준으로 번식성적을 평가하여 1년에 80필 이상을 생산하면 상등, 60필 이상은 중등, 60필 이하는 하등으로 분류했다. 이런 결과에 따라 30개월 안에 상등이 세 번이면 관직을 올려주고, 상등이 한 번이면 그대로, 중등이 세 번이면 위계를 깎았으며, 하등은 군두, 군부, 목자 모두 파면이라는 중징계와 함께 손실된 가축에 대해 변상케 했다.

 

 

 

 

 

 

 

▲ 렛츠런팜 제주 육성목장의 당나귀 모습.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볼 때 제주는 고려시대부터 목마장으로 유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귀포시 사계리 해안의 말 발자국 화석을 비롯해 협재굴과 곽지패총에서 발굴된 말 뼈 등으로 미뤄볼 때 제주에 말이 서식한 시기를 구석기 말부터 청동기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탐라국 당시에는 백제와 신라, 고려에 말을 예물로 조공했고 중국, 일본과도 교역품으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본격적인 목축업의 발달은 원나라가 제주를 지배하던 고려 충렬왕 2년(1276년) 몽골식 목장이 설치되면서부터다. 지난 2006년 발간된 제주도지에 따르면 원은 탑자적이란 인물을 탐라총관부의 ‘달로화적(다루가치)’로 임명하고 말 160필과 함께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로 보냈는데 이것이 목마장의 시초가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목마장은 더욱 확대되기 시작했다. 제주목사는 3읍(제주, 대정, 정의)의 마정을 총괄하고 각 읍에 말을 관리하는 감목관을 두어 제주판관, 대정현감, 정의현감을 겸임하도록 할 정도로 제주의 행정은 마정(馬政)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세종 11년(1429년)에는 제주출신 고득종의 건의에 의해 한라산 중턱에 마목장을 10개로 구분한 ‘10소장(所場)’을 설치하고 소장에는 말의 이동을 제한하는 상잣성과 하잣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성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 ‘10소장’은 다시 천자문 순으로 자목장(字牧場)으로 나눠 편성됐다. 당시 1~6소장은 제주목, 7~8소장은 대정현, 9~10소장은 정의현에 속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소장마다 마감(馬監) 1명이 총괄하고 자목장 마다 암말 100필, 수말 15필을 1군(群)으로 정해 목자 등을 배치해 관리했던 것이다. 연간 10소장에서 생산된 말은 태조 7년(1398년)에는 4000여 필, 세종 28년(1446년) 9780필, 효종 3년(1662년) 1만 385필로 대부분 배에 실려 조정에 공물로 바쳐진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말이 징발되고 유실되면서 국영목장인 10소장이 황폐화되자 10소장과 별도로 산마장(山馬場)이라는 일종의 개인목장이 들어서는데 정의현 9~10소장 주변에 목장을 조성한 헌마공신 김만일이 당시 사목장을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와 관련 이종언 박사(전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원)는 “당시 제주의 말고기는 고급식품이었다는 기록도 보인다”고 말하고 “조선시대 ‘태조실록 권8’에는 음력 섣달그믐 밤에 암말을 잡아 건마육포(말린 말고기포)를 만들어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실록 권2’에는 제향에 올렸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뇌물로 쓰였을 정도로 맛은 최고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군마 확보를 위해 말 도축을 금했던 세종 때 일인데, 세종 29년 제주목사였던 이흥문은 세종의 최측근 황희와 김종서 등에게 건마육포를 뇌물로 바쳤다가 사헌부에 발각돼 처벌을 받았다. 이렇듯 제주도의 말고기는 전통문화인 추렴(모임이나 놀이, 잔치 따위의 비용을 여럿이 나눠 내는 것)과 결부돼 이어져 왔다”고 전했다.

조선시대 이래 유지되어 온 제주도 중산간지역의 국영목장은 대한제국으로 접어들면서 공마제도가 폐지되면서 말 대신 소를 생산하는 목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910년 한일강제 병합과 함께 진행된 토지조사 사업에 따라 1910~1930년대 본격적으로 마을 공동목장지대로 재편됐다. 화전민들이 이주하면서 많은 목장용지가 경작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제주도세요람’(1939)에 따르면 당시 도내에 설치된 마을공동목장은 116개이고 면적은 3만2290㏊에 달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제주의 말 사육 두수는 1만1000여 두에서 2만2000여 두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1945년 광복 이후 제주 4·3사건과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제주의 축산기반이 상실되기 시작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제주특별자치도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내 말 사육 농가 및 두수는 2013년 12월 기준 1006호에 1만9449두(제주마 361농가에 1995두, 제주산마 453농가에 1만1247두, 더러브렛 192농가에 6207두)이다. 사육 규모는 1960년 1만2077두에서 1980년 2401두로 큰 폭으로 줄어든 이후 1990년 2439두, 2000년 7348두, 2005년 1만4689두, 2010년 2만2233두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1년 2만1797두, 2012년 2만337두 등 근래 들어 또다시 소폭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전국 대비 농가 수는 58.4%, 사육 두수는 67%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말 산업을 통한 연도별 매출액도 2010년 914억 원, 2011년 954억 원, 2012년 1306억 원 2013년 1698억 원 등 매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렇듯 말산업은 농업·농어촌과 관련이 깊은 희망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소득 증가에 비례해 성장잠재력이 높고, 부가가치가 큰 복합산업(1~3차 산업)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시장개방과 승마수요 증가 등에 대비해 말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면 농촌의 대체 소득원으로 충분한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주도청 강원명 사무관(말산업육성담당)은 “제주가 말산업 특구로 지정되면서 말의 고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제주가 한국의 말산업을 견인하는 리더로서 승마산업, 마육산업, 경마산업과 연관산업이 결합하는 국내 말산업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여 국민의 여가문화 및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말산업의 발전모델 제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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