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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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냅니다
  • 조원 기자
  • 승인 2015.02.23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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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홍성읍 박창진 옹

▲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무에 글씨를 새기고 있는 박창진 옹.

서각과의 운명적 만남… 한해 작품 60점 내외 완성
선조의 전통서각 계승… 130점 작품 모두 이웃에게


“한 번 손에 잡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만들어요. 저녁 상 차렸다는 아내의 말에 겨우 손에 쥐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습니다. 노년에 이만한 즐거움도 없는 것 같아요”

글자 그대로 문자와 칼이 만나 만들어진 서각(書刻)의 매력에 푹 빠진 박창진(82·홍성읍) 옹의 말이다. 그가 서각을 알게 된지 올해로 10년째다. 2006년 홍성문화원에서 열린 서각 강좌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서각은 서예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그의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이 다름 아닌 서각 때문이라며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가 하고 있는 서각은 전통서각이다. 전통서각은 경판이나 현판과 같이 목재를 사용하여 선조들의 서각 기법을 계승 발전시킨 새김질이다. 단풍나무나 자작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의 재료 위에 붓글씨를 올려놓고 글씨대로 새겨 나간다. 이후 자신만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물감이나 페인트 등 각종 색감 입혀 고풍스럽게 작품을 완성시킨다.



7남매를 둔 그는 지금까지 서각을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가족 덕택이라고 말한다. 그는 “목판은 자녀들이 구해다 주고 있으며 서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내가 배려해 준 덕분에 지금까지 서각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금까지 두 번의 작품전시회도 연 그이지만 자신은 단지 서각 마니아 일 뿐 전문가는 아니라고 소개했다. 서각을 처음 접했을 때 운명처럼 마음에 들어왔다고 고백하는 박 옹. 그는 “서각 작품을 보면서 이거다 싶었어요. 운명적 만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교장 퇴임 후에 소일거리로 서예 강사로 나섰지만 제 자신을 채우지는 못했는데 서각을 만나면서 삶이 달라졌어요. 사는 재미를 다시금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홍성에 서각 동호회가 결성되면서 현재 2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에 있지만 박 옹만큼 활발하게 작업 하는 사람은 없다. 가장 많은 연령에다가 매달 5점 이상씩 꾸준히 작업하는 그의 열정에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만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서각에 입문한 지 첫해 목판을 자르는 과정에서 전기톱을 잘 못 다뤄 손가락 하나를 잃고만 것이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손가락을 이으려고 했지만 고령으로 인해 손가락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서각에 대한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아물 즈음 그는 마당에 있는 창고를 개조해 공방을 만들며 서각 작업에 더욱 몰두했다.



“신문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만나면 종이에 적어둡니다. 그 의미를 먼저 제 가슴에 새긴 후에 종이에 옮겨 적고, 나무에 새겨나가는 거죠. 제 마음을 움직인 글귀나 사자성어가 주로 작업 대상이에요.” 이렇게 탄생한 작품은 한 해에 60개 내외다. 같은 글귀도 글씨체와 디자인을 변형해 다양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3개월에 한 작품도 만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3일이면 가로세로 50cm 크기의 액자를 만들 정도로 능숙해 졌다. 박 옹은 2012년 작품 전시회에 진열됐던 130여점도 모두 나눠줬다. 이듬해 열린 두 번째 작품 전시회에서는 작품을 모두 군 장학회에 기증한 바 있다.

“작품이 비워져야 또 다른 창작 욕구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필요한 분들이 사용하면 그만입니다. 이 나이에 서각하면서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사실 행복해요. 앞으로 기량이 더 쌓이면 한 번 더 전시회를 열어서 더 많은 군민들에게 서각 매력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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