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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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 소묘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5.04.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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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계절이 오면 섬진강은 조용히 기지개를 켠다.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장수를 지나 겨우내 꽁꽁 얼었던 지리산 계곡의 맑은 물과 합류한 후, 광양의 남해바다 앞까지 흘러가는 212km의 여정 내내 섬진강은 주변에 봄 향기를 가득 뿌린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그 산수유는 지리산 자락의 구례 산동마을에 무더기로 숨어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 시목도 바로 그곳에서 알싸한 향기를 천년 넘게 뿜어내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간밤의 꿈인 듯이 몽몽하게 느껴지는 산수유는 가까이 바라볼수록 더욱 그러하며, 막상 노오란 그 꽃을 떨쳐놓고 오는 길엔 더더욱 몽몽하게 그리워지는 묘한 특징이 있다.

<매화>. 맑고 투명한 섬진강물은 고운 강모래가 가득한 하동 평사리를 지나 광양 다압마을에 이르러 흰 꽃이 천지사방에 가득한 매화정토를 만들어낸다. 한평생 춥게 살아도 함부로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는, 이른 봄 날 부지런한 상춘객이 장독대 가지런한 홍쌍리 청매실 농원의 뒷산을 거닐다 지쳐서 팔각정에 잠시 몸을 뉘일 때 쯤이면, 인심이라도 쓰듯이 연하디 연한 향기를 슬며시 풍겨내곤 한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라고 입구에 서있는 이육사의 시비가 조금 당황스럽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매화향기가 조국독립의 염원이든, 이른 봄 향기를 맡으러 일상에서 탈출해온 직장인의 염원이든, 매실원액을 싸게 사가려는 아줌마의 염원을 담았던지 간에, 매화정토의 세상에서 만나는 매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저 매화와 소통하며 이른 봄날을 즐기면 그만인 것을.

<벚꽃>. 화개장터에서부터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길은 봄날 섬진강변이 만들어내는 가장 멋진 하이라이트다. 섬진강변 주변 전체가 벚꽃 터널 일색이긴 하지만 이곳은 특히 벚꽃이 ‘환장하게’ 핀다. 이 꿈속같은 길을 청춘남녀가 두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고 하여 ‘혼례길’ 이라고도 부르는데, 벚꽃 개화시기에는 낮이나 밤이나, 젊으나 안 젊으나, 혼례를 처음하거나 여러번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벚꽃가지보다 더 주의해야 할 셀카봉만 잘 피해서 걷는다면 ‘벚꽃엔딩’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쌍계사 입구에 있는 ‘쌍계석문’의 글씨와 홍성군 장곡면의 쌍계계곡에 있는 ‘쌍계’라는 글씨가 최치원의 동일한 필적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서희와 길상의 추억이 서려있는 최참판댁을 뒤로하고, 화개장터 어느 허름한 식당에 앉아 풋풋한 봄나물에 탱글한 은어회, 맑고 투명한 재첩국 한 그릇을 먹고 장터를 어슬렁 거리다보면 봄은 어느새 등 뒤로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넨다.

‘겨울을 인내한 봄이 산수유, 매화, 벚꽃을 만들어 내며 흰 모래톱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평사낙안 섬진강변은 <대한민국 봄나들이 1번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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