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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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며…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8.1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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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창 전 무공수훈자홍성지회장 인터뷰
황규창 전 무공수훈자 홍성지회장이 6.25 당시의 전신상황을 지휘관다운 제스처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황규창 전임 무공수훈자홍성지회장은… 

홍성 구항면 출신으로, 지난 1948년 12월에 소년병으로 육군 제9연대 1중대 1소대에 입대했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6·25전쟁에 참전해 1953년 7월 27일 22시 정전협정 체결 시까지 전투에 참전했으며, 당시 수차례의 전투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5월 17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관내에도 6·25 전쟁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은 여러 수훈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무공수훈자홍성지회 최종수(76) 사무국장은 여러 무공수훈자 가운데에도 홍성에서 유일하게 전국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황규창 전 회장을 소개했다. “1948년도 육군 제9연대에 소년병으로 입대했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근무하다가 전쟁이 터져 10리쯤 떨어진 포천으로 갔었죠.”구항면이 고향인 황규창(86) 전 무공수훈자홍성지회장의 말이다. 황 전 회장은 19살의 나이에 입대해 6·25 전쟁을 겪었다. “1950년 6월 17일이 토요일이었는데, 전국에 비상령이 내렸습니다. 갑작스럽게 휴가나 외출, 외박이 모두 금지됐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6월 24일, 전국에 내렸던 모든 비상령이 해제돼 군인들 대부분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황 전 회장도 6·25 전쟁 하루 전날인 24일 부대 밖으로 나섰다. 당시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휴가를 나가면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았고, 황 전 회장도 음식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부대에 돌아와 배탈이 나서 새벽에 화장실을 수차례 오가는데 갑작스레 비상경보가 울렸다고. 이에 전 부대원은 차를 타고 포천으로 이동했는데, 시내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곳곳에서 포성이 울렸고,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후퇴밖에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야포도 없고 박격포만 있는데, 위에서는 아예 무장을 하고 중공연합군이 밀고 내려오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죠.” 장맛비가 내리던 25일 새벽부터 26일까지 황 전 회장과 부대원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서울 쪽으로 내려왔다. 황 전 회장은 “지나가다 보이는 감자밭에서 덜 익은 감자를 캐 먹으며 계속 후퇴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황 전 회장의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며 방송이 나왔는데 “곧 있으면 UN군이 도착하니 전 국군은 안심하고 용감히 싸워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어 마을 주민들이 드럼통에 소금물을 떠와 손을 씻게 하고 밥을 갖다 주기도 했다고, 그렇게 서울에 도착한 황 전 회장은 창경궁에 있는 방공호로 향했다. 당시 방공호에 있던 사람들은 “군복을 입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알려주며 황 전 회장에게 밥을 줬다. 이어 황 전 회장은 적군을 피해 한 민가에 들어갔고, 민가 주인아주머니는 황 전 회장을 소나무 가지들로 덮어 숨겨주고, 민간인처럼 위장할 수 있도록 옷을 줬다. 그 때부터 황 전 회장은 민간인처럼 숨어 지내며 1년 여 간 서울에서 전투를 벌였다.

 

황규창 전 회장의 소년병 시절 모습.

“하루는 창경궁에서 나와 종로3가, 을지로3가를 지나 남산을 넘고 이태원을 지나 용산으로 향했죠. 인민군들이 만세를 부르고 오토바이에 기관총을 달고 다니더라고요. 거기서 벗어나려고 한강 인도교를 지나 제방둑에 올라서는데, ‘능선에서 걸으면 발각된다’는 수칙이 떠올라 포복으로 올라갔죠. 그러다 인민군에게 발각이 돼 강가로 도망을 치는데 마침 배 한 척이 있었습니다. 배에 타려고 하니 선장이 당시 돈 1원인가 10원을 내라고 했는데, 어느 군인이 자신이 나중에 계산할 테니 모두 태우라 해서 여러 명이 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죠.” 황 전 회장은 “한참 가던 배에서 군인이 갑자기 욕을 하며 선장에게 내리라고 했다”면서 “그 때 그 군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강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계속되던 1951년 11월 경, 황 전 회장은 소대장이 돼 소대원들과 함께 강원도에서 중공군과 접전을 벌이게 됐다. 당시 1개 중대를 기습하기 위해 숨어있던 황 전 회장은 날이 밝을 때 능선으로 지나가는 적군과 적진지를 발견해 총을 거꾸로 멘 채 수류탄 두 개를 투척했고, 7명의 포로를 붙잡았다. 이후 황 전 회장은 계속되는 국지전에 참여했는데, 한 번은 깊은 계곡에서 적을 맞닥뜨렸다. 공격대기선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불과 100m 위에 적진이 보였다. 적들은 소나무로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황 전 회장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와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화염방사기로 공격을 해 적진지 안의 적 절반 이상을 사살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황 전 회장은 45일간 같은 자리에서 전쟁을 하는 등 수없이 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3년 여간 계속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정말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 후손들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며 평화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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