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구를 위한 청약가점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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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누구를 위한 청약가점제 인가.
  • 이범석 기자
  • 승인 2007.09.09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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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청약가점제와 관련 취재과정에서 만난 직장인 윤모씨(30, 회사원).

직장 초년생인 그는 요즘 400만원 짜리 청약부금 통장을 갖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 청약사이트에 접속한다.

‘내집 마련’의 꿈을 갖고 3년 동안 부어온 청약 통장이 가치를 발할 기회가 9월이 되면 청약가점제 시행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9월부터 무조건 청약가점제가 시행된다고 하니 우리 같은 직장 초년생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DTI 규제 등으로 시장이 안정되고 있는데 왜 가점제를 굳이 시행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그리고 현재 부동산시장의 향방을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 9월이 되었다. 그런데 정부는 9월을 몇 일 앞두고 청약가점제 적용 기준을 갑자기 바꿨다.

처음에는 9월 1일 이후 분양승인 신청을 하는 주택부터 청약가점제를 시행키로 했지만 주택공급 규칙을 고쳐 9월 1일 이후 입주자모집 공고를 내는 모든 주택에 적용하기로 변경한 것이다. 이는 건설사가 9월 이전 해당 지자체에 분양 승인을 신청했더라도 9월 이후 분양 공고를 할 경우엔 청약가점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청약가점이 낮은 서민들은 좋아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된서리를 맞은 꼴이 됐다. 다행히 홍성군에는 해당 업체가 없지만 인근 타도시 이주를 하려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청약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곳이다. 기존 주택공급 규칙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던 건설 업체들도 당황해하고 있다.

청약가점제의 취지 자체에 딴죽을 거는 건 아니다. 집 없고 가족 많은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줘 내집 마련 기회를 늘리는 건 당연히 반겨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자체를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품으로 간주하지 않는 부분이 아쉬울 뿐이다. 정당하게 추첨을 하면 되는데 굳이 시장원리를 무시하면서까지 정책을 시행할 이유가 있을까.

정부 생각만큼 집값 안정 효과도 크지 않을 수 있다. 매수세만 감소시킬 뿐 우선 청약 자격을 갖지 못하는 일반 청약자들이 기존 주택시장으로 몰리면서 가격 하락세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지역별, 단지별로 차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청약 가점제는 정부의 정책 중 실패한 정책의 하나다”며 “자금 줄을 온통 막아놓고 가점만 높인다고 해서 내집 마련이 쉬워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오히려 자금 여유가 있는 젊은 층이나 내집 마련 시기를 놓친 중년층 모두의 주택 구입 수요를 봉쇄한 정책이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들락날락하는 부동산 정책을 보고 몇 달 전 일부 언론에 실린 일본 노무라연구소의 한 연구원의 얘기가 문득 생각났다.

“한국은 정책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데도 높은 수익을 거두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나오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며 “정부가 잘하는 건지 국민들이 잘 따라가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 정부의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은 이 연구원의 말을 한번쯤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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