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이 사라진 秋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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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움이 사라진 秋夕
  • 이범석 기자
  • 승인 2007.10.0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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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미덕은 ‘쉼’이고 ‘넉넉함’이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과 함께 찬찬히 회포를 풀면서 일상의 잔 때를 걷어낼 여유가 주어지니까 말이다. 어른들은 손자 손녀들의 얼굴을 보며 덕담도 하고 정을 나눈다. 손자 손녀들은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아랫사람은 어른에게 ‘베풂의 여유’를 보여주는 게 정녕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그렇지 못했다. 추석 연휴가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9일까지 이어지자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기보다는 국외 관광지나 휴양지로 발길을 돌렸다. 신세대들은 부모님과 함께 하기보다는 연휴를 이용해 성형수술을 하거나 취업 특강을 듣는 등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을 외면했다. 이를 보며 추석이 쉬는 날, 휴일로 변해버린 느낌이어서 사뭇 안타까웠다.

또한, 지금 우리의 고향 농촌은 어떤가. 군내 농촌은 65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고령화 사회다. 한미 FTA 체결로 모든 농축산물이 수입되다 보니 고향 농민의 삶의 터전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도시민들과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져 양극화가 더욱 심화해 ‘추석의 풍성함’을 나눌 여유가 없어 보였다.

추석의 고향 민심도 예전과 달랐다. 고향을 찾은 정치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친척이거니 해서 마지못해 대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 후보의 윤곽이 대체로 가려졌지만 대통령 선거 따위는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간혹 나온 대통령 후보 면면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보다 더 살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이들 후보 개개인에 대한 자질이나 지도력을 가리기보다는 지금 농촌의 어려움을 해결할 인물을 찾고 있었다.

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서로 일과 나랏일을 걱정하는 그런 날이 아니었다. 따뜻한 고향이기보다는 말 그대로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느껴졌다. 추석이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뭘까. 여유와 너그러움을 잊고 용서할 줄 모르고, 또 베풀 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단면 때문이다. 이는 내년 추석을 더 걱정스럽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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