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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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5)
  • 오천 이 환 영
  • 승인 2016.01.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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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물 사이의 장엄한 세상
▲ 제벽사(題甓寺) 여주 신륵사일우 남한강 50×86cm 한지에 수묵담채 2015.

이달(李達)은 손곡(蓀谷) 이전에 서담(西潭)이란 호를 썼다. 손곡은 원주시 부른면 손곡리의 지명이고, 서담은 ‘서쪽연못’이란 뜻으로 여주에 잠시 머물렀을 당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재한 지명은 아닌듯하여 훨씬 시적(詩的)이다. 여강으로도 불리는 남한강이 지나는 경기도 여주땅은 원주의 손곡리와 가깝다. 예로부터 한양과 물산의 왕래가 많은 수운(水運)으로 천년 고찰인 신륵사와 함께 기름지고 아름답다. 고려 이후에는 벽절(甓寺)로 불렸는데 이는 동쪽 언덕에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에서 유래한다. 오늘도 여주는 관광단지로 명성을 이어간다.

이곳을 주제로 시인은 걸작 “신륵사에 쓰다”(題甓寺)를 남긴다.
“여강에 삼월이 되자 외로운 배 타고 돌아 왔지/내 집은 서담 구름과 물사이에 있네/마름 물가에 안개 일고 새는 나무에 깃드는데/꽃이 석대에 피자 스님은 문을 닫는구나”(驪江三月孤舟還 家在西潭雲水間/煙生頻渚鳥投樹 花發石臺僧淹關)

이달은 시(詩)의 둘째 구(句)에서 자신의 집이 “구름과 물사이 서담”에 있다고 쓴다. 시인은 서담(西潭)을 빌려 자신의 정체성과 철학적 사유 공간을 확장한다. 서쪽의 작은 연못은 평생을 그리워한 고향 홍주 땅 일수도 있고 그의 시적 신념이 담겨있는 문학세계 일수도 있다. 가난한 심령이 소유하는 천국 같은 곳이며 시인의 집 서담은 하늘과 땅, 구름과 물이 만나는 우주적 공간이다. 왕유(王維)의 명시(名詩) 중 명시로 알려진 ‘종남별업’5·6구의 “가다가 물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 앉아서 구름 이는 때를 바라본다”(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와 소식(蘇軾)의 명구, “빈산에 사람 없는데 물 흐르고 꽃이 피네”(空山無人水流花開),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 “물은 머물면 땅처럼 낮게 하고 마음 씀은 연못처럼 깊으며”로 해석하여 물과 구름, 그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의미를 진리와 도(道)의 경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물과 구름의 무궁한 순환과 질서, 인간의 욕망, 학문과 예술도 그 사이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가 아닌가. “내 집은 서담, 구름과 물 사이에 있네” 문장은 득의(得意)가 아닌 실의(實意)에서 나온다고 한다. ‘시가 궁해진 뒤에 더 좋아진다’는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과 같은 의미다.

이달의 시 예술이 왕유의 시와는 다른 의취(意趣)와 장엄하고 숭고한 시문학적 경지에 있음을 본다. 구름과 물처럼 떠돌던 시인의 영혼은 지금 저 하늘과 강(江) 사이 어디쯤에서 고단한 잠을 청할 것인가. 필자는 여주 스케치를 끝내고 서울로 향하면서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빌딩숲을 보며 이미 상실된 서담(西潭)을 그릴수 있을까 고민하며 슬퍼한다.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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