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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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한국인들
  • 권기복<시인·홍주중 교사>
  • 승인 2016.01.1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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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을 이어 2016년 새해에도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걸리는 것이 먹방(먹는 방송, 요리하는 방송인 쿡방까지 포함)이다. 갖가지 요리를 지지고, 볶고, 튀겨 내거나 맛있는 음식집을 찾아다니면서 입이 찢어져라 음식을 밀어 넣는 광경을 보는 일이 예사가 되었다. 우리네 관습상 음식은 맛있게 먹되, 남에게 식사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삼가는 것이 예의에 속했다. 그런데 그런 예의 정도는 완전 무시되고 있다.
요즘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 채널 등에서 방영되는 먹방을 대충 손꼽아 봐도 열댓 편이 짚어진다. 인터넷 상에서는 3000개가 넘는 먹방이 있다고 하니,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요즘 웬만한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요리나 음식점에 가서 찍은 음식 등을 찍어 자신의 홈페이지든, 카톡 방에 띄우는 것이 유행하고 있으니 요즘 한국사회는 음식 천국이다. 이와 더불어 쉐프라는 요리사(쉐프 분들에게 혼쭐이 날 말인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능력으로는 구분이 잘 안 됨.)들이 탈렌트나 가수 못지않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먹방이 우리나라에서만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도 세계 각국의 방송매체마다 먹방이 방영되고 있다.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욕구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 이미 일본에서는 <맛의 달인>이라는 108권에 이르는 연재만화가 1983년부터 시작되어 2012년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요리의 철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최상 인기를 누리며 상영되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일본이 경제 불황의 늪으로 한없이 빠져들던 시기였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Hierarchy of Needs Theory)에 의하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를 거쳐 안전욕구, 소속감과 애정욕구, 존경욕구, 자아실현욕구로 지향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 가정에서 ‘첫째, 일단 만족된 욕구는 더 이상 동기부여 요인이 아니다. 둘째, 인간의 욕구체계는 매우 복잡하다. 셋째, 상위수준의 욕구가 한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일단 하위수준의 욕구가 우선적이고 충족되어져야 한다. 넷째, 하위수준보다는 상위수준의 욕구에 보다 많은 충족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 의하면 한국인의 대부분은 3단계(소속감과 애정욕구)나 4단계(존경욕구) 쪽에 있어야 한다. 1단계인 생리적 욕구는 세계에서 15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의 위상에서 해결된 문제이며, 2단계인 안전욕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1위인 한국’이라는 차원에서 남북갈등을 제외하면 문제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인이라면 3·4단계의 고민을 통해 5단계인 자아실현욕구를 지향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얽매여 먹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니, 이 무슨 기이한 현상일까?

많은 사람들은 1인 가구의 증가와 가족의 해체 현상, 3저 현상(저성장, 저소득, 저수익) 및 청년 취업난과 같은 사회 경제적 변화를 말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한 소비 위축과 웰빙 식생활 추구라는 소비트렌드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또는 오늘날의 정치적 불안과 폐쇄적인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도 한다. 앞의 일본 예를 보아도 먹방은 경제나 사회 불황의 시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욕구의 퇴행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의 붕괴로 볼 수 있다. 매슬로우도 ‘이 욕망의 피라미드 어느 한 단계가 결핍되면, 사람의 욕구는 그 결핍된 요소를 채우기 위해 밑으로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은 불황의 늪으로 빠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그처럼 느끼는 것은 성장의 신화에만 익숙해졌다는 면도 있지만, 지나치게 물질적 자본주의에 얽매여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한국인들은 먹고 또 먹어도 배고픈 괴물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질적 자본주의는 5단계로의 욕구 지향보다는 1단계의 욕구 충족 매너리즘에 쉽게 빠져들게 하여, 괴물을 만들어 내는 마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물질적 욕구 충족보다는 정신적 욕구 충족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행복은 맛있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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