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 지나가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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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 지나가는 세월
  •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 승인 2016.01.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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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8)
▲ 병중절화대주음(病中折花對酒吟),-35×50cm,-한지에-수묵담채,-2015

“꽃 필 철이건만 병들어 문 깊이 닫고, 억지로 꽃가지 꺾어 술 마주해 읊조린다 / 서글프게도 흐르는 세월 꿈속에 지나가니, 꽃구경해도 이젠 소년시절 마음 없네”
花時人病閉門深 强折花枝對酒吟 ​/ 惆愴流光夢中過 賞春無復少年心
화시인병폐문심 강절화지대주음 ​/ 추창유광몽중과 상춘무복소년심
- 병중에 꽃 꺾어 놓고 술을 마주하며 읊다 -
봄꽃은, 혹독한 겨울이 끝난 언 땅에서 일어선 강인한 생명으로 애절하고, 시린 뿌리와 작은 잎으로 피워내는 꽃들의 지극한 빛깔과 맑은 향기로 더욱 처연하다. 그리고 어느 봄날 무욕의 모습으로 낙화하여 아름다움을 결실(結實)한다.
“풀섶에서 자란 붉은 장미여! 빛에 씻긴 진홍색깔과 그 농염하고 향기로운 자태를 자랑한다만, 아니다 내 바르게 이르려니와 너의 불행은 목전(目前)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서문에 있다.
꽃을 그리는 세밀화 작가들의 작업을 “꽃들의 샐깔의 내적 필연성을 규명하는 일”이라고 김훈은 ‘내 젊은날의 숲’에 썼다. 꽃의 종교적 비의(秘儀)와 미적신비를 각기 말하고 있다.
봄꽃은 그렇게 꿈을 꾸듯 신비로운 색채의 향연을 끝내고 마술처럼 홀연히 흔적을 지운다.
“금빛 장미화는 이미 시들었고, 모란도 오래 묵었다. 꽃 시절이 바야흐로 끝나려하니 봄이 벌써 갔다는 생각이 든다.” 유만주(兪晩柱, 1755~1788)의 흠영(欽英)에 있다.
우리의 시인 이달(李達)은 병(病)든 몸으로 꽃가지 하나 꺽어 놓고 방 깊이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꿈같이 지나가버린 세월, 소년시절의 감흥이 사라져버린 인생의 무상함을 슬퍼한다.
주선(酒仙) 이백(李白)은 유명한 시 독작(獨酌)에서 “꽃 사이에 앉아 홀로 마시자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다. 달도 그림자도 술이야 못 마셔도 그들 더불어 이 봄밤을 즐기리” 봄밤의 흥취와 낭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이달의 시에는 유한(有限)한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있음을 본다.
허균은 손곡 산인전에서 스승 이달을 이렇게 언술한다.
“그의 마음은 가운데가 텅 비어서 아무런 한계가 없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성품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 가난과 곤액 속에 늙었으니 이는 참으로 그의 시 때문인 것 같다. 그의 몸은 곤궁했지만, 그의 시는 썩지 않을 것이다. 어찌 한 때의 부귀로서 그 이름을 바꿀 수 있으랴.”
필자는 매화 한가지와 빈 술잔을 그려 시인의 소년심을 깨우려한다. 그러나 그 또한 부질없음은 모든 게 빛처럼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꿈같은 것을.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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