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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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0>
  • 한지윤
  • 승인 2016.05.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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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소영이는 시청 교통과에 서울 2푸 9238번의 차 번호를 조ㅚ시켜 본 결과 문제의 벤츠차는 운전자가 최명복이었고, 소유자는 윤미라라는 여자의 명의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명복이라는 것은 사실은 케이블의 이름이고 윤미라는 그의 아내 이름일 것이라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그의 이름을 알아냈지만 그 이상 그녀로선 더 알아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러나 세번째로 다시 또 한번 케이블과 만나게 되리라고는 소영이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장마가 계속되다가 그날만은 드물게 맑게 개인날의 저녁 때였다.
소영이는 중고책방에 들러 신간 서점에서 품절된 책을 사가지고 전철을 탔다. 무더운 날이었으므로 그녀는 조금이라도 바람을 쐬어보려고 창문가에 버티고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몇번째인가의 정류장에서 전철 건널목 신호대기로 잠시 멈춰 서있었다. 소영이는 무심결에 전철건널목 곁에 늘어서 있는 자동차의 무리를 복 있다가 그만 숨이 멈출듯 깜짝 놀랐다. 자동차무리 가운데는 카키색 미군용 우편차가 한대 서 있었고 운전석의 옆자리에는 군복을 입은 벤츠의 사내 케이블이 서류인지 무슨 종이 조각인지를 들여다보면서 따분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지 않느가. 하사 계급장을 단 케이블이 우편차 근무를 하고 있는 꼬락서니는 마치 한폭의 코믹한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클라크 케이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투로 소영이는 대담하게 외쳤다. 그 소리에 케이블의 시선이 이상스럽다는 듯 이곳 저것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소영이의 모습을 발견했을때 전철건널목의 가림막대가 올라가면서 그 우편차도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소영!"
"노란색 벤츠는?"
"친구에게 돌려줬지!"
"놀음에서 땄어?"
"음……몽땅 털렸어!"
소영이는 동승한 주위 사람들이 어리벙벙해하는 시선도 아랗곳하지 않은채 태연하게 지껄였다. 우편차는 필사적으로 따라 붙어 달리려고 했다. 그러나 차량의 무리들로 혼잡한 거리였으므로 추편차는 점차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안녕!"
"안녕! 소영이. 굳 럭키!"
얼굴을 차장밖으로 내민 케이블과 소영이사이로 노을빛이 엷게 깔리고 있었다. 그 노을빛을 받으며 하얀 치아와 장난기가득한 눈동자를 굴리며 미소짓는 클라크 케이블을 실은 카키색 미군용 우편차는 직진의 방향으로, 그리고 소영이 탄 택시는 오른쪽 방향으로 틀어 각각의 행선지를 향했으므로,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져갔다.

최신식 전위파족들의 수호신

수업 중 유명세 교수는 장난질 치며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그가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 빨간 스웨터를 입은 문제의 여학생은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칠판에다 고대 영어의 방언분포도를 다 그리고 나서 유명세 교수가 돌아보니 빨간 스웨터의 여학생은 어느새 세 번째 줄 창가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여우에게 홀린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시 칠판에 판서하고 돌아서 보니 이번에는 여덟 번째 벽 가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왜 학생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앉는 거죠?”
유교수는 냉정한, 어딘가 비인간적인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학생들은 순간 모두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빨간 스웨터의 여학생은 그러나 시침을 떼고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듯이 자기도 모른 척하는 낯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네야! 빨간 스웨터를 입은 여학생......”
그러자 각오를 했는지, 그녀는 벌떡 일어서면서 대답했다.
“저어......빌려줬던 돈을 거두고 있는 중입니다. 가만있으면 주지도 않고 다른 곳에서는 도망쳐 다녀 좀체로 붙잡기가 힘든 걸요.”
“제 자리로 돌아가시오.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 다니며 돈을 받아 내려는 것 따위는 자유의사니 상관없지만, 그럴 경우 비록 수업에 출석을 하고 있어도 결석으로 학점 처리를 할 테니 그리 알기 바랍니다.”
유명세 교수는 여학생들에게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는 교수와 학생이라는 이외의 그 어떠한 친밀한 관계도 맺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말이 정중하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며 오히려 인간적으로 깊은 관계에 빠져드는 것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함에서다. 더욱 ‘네에......선새앵님......’하고 아양 부리는 여자라는 이성의 무기를 내세우는 여학생들에게는 단호히 냉혹했었다.
그런데 유명세 교수와 같은 교수실에 있는 나대수라는 교수는 여학생에 대해서는 학점이나 이성적으로나 매우 후했다. ‘학생’대신에 ‘그대’라든가 ‘너’라든가 따위로 마치 십년지기가 되는 것처럼 불렀고 또 아직은 젊으면서도 어깨가 뻐근하다느니 하는 구실을 붙여 연구실에 놀러오는 여학생들로 하여금 어깨를 주물러 달래느니, 등허리를 두들겨 달래느니 능청을 떨었다.
나교수는 후처의 아들인데, 유교수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후처의 자식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아, 그렇습니까?”
하고 단순히 말할 뿐이었는데도 그는 웬지 아주 그 사실에 열등감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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