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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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1>
  • 한지윤
  • 승인 2016.05.2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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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입신양명의 야망을 품고 자신을 바보로 여긴다든가 호의를 가져 주지 않는 모든 인간들, 이웃들, 학교의 동급생, 담임선생에 이르기까지 단단히 복수를 해줘야겠다고 결심을 하곤 했었다. 사실 그는 학교 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담임 선생을 비롯해 동급생 친구들조차 그에게 호의는 커녕 인정조차 해주지 않았다. 또한 성격이 삐뚤어져 있어서 대인관계의 교제가 좋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간섭 같은 것을 받게 될 때에는 증오와 경멸 이외의 다른 감정의 교류를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뒷날 성인이 되어 세상의 사리에 대해 분별을 알게 되자 나교수는 오히려 명랑하고 사교성이 좋은 인간으로 변했다. 농담도 하게 되었고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사람이 된 것이다. 나교수는 세상에 우스개소리를 말하는 재능마저도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음을 알게 되자 단호히 결심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으로 백팔십도 자아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던 나교수의 적극성은 어딘가 초점이 빗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유교수로부터 번역하는 일거리를 얻어 내는 길을 트게 되었는데, 대학 봉급 이외의 몫인 용돈이 굵직하게 들어오는데 한번 맛을 들이게 되자, 그 부수입에만 몰두하게 되어 강의를 결강하면서까지 그 일에 열중했다. 황금에 일단 오염이 되자 그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돈에 관한 농담을 떠벌여 댔다. 아마 그것은 한 때 그가 결핵에 걸리기까지 하면서 분발했던 고학 생활이 황금에 더 부채질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나대수 교수는 대단치도 않은 일에 곧잘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그는 교수실에서 공공연히
“유명세교수, 2학년 미술학과 박성희 양에게 점수 좀 후히 주시구려. 약간 알고 있는 여학생이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멋적게 웃는 것이었다.
약간 알고 있는 여학생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었다. 더군다나 나대수 교수는 여학생들 앞에서 곧잘 음담패설을 하기도 하는 이상 야릇한 버릇이 있어서 그는 안마를 받으면서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고, 학점을 후히 주라는 부탁을 하곤 했으므로, 유명세 교수는 연구실에 쳐박혀 있기조차 싫었다. 소영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언니인 민영이에게 들었다. 유교수는 소영이의 형부인데 사립대학인 인문대 문학부에서 중세 영문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유교수는 나쁘게 말하면 어딘지 우울한 그늘이 깔려 있고, 좋게 말하면 이지적이고 깔끔한 얼굴을 지닌 중간 정도의 키에 다소 비만형의 학구파에 속했다.
언니가 한 출판사의 편집부에 근무하고 있었을 때 유명세 교수의 원고를 받으러 자주 그의 하숙집에 갔었다. 유교수의 눈썹 부분에는 언제나 우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서 그는 여간해서 잘 웃지않는 인물이었다.
“저 얼굴로 언니를 잘도 꼬실레이션을 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겠지. 어떤 무드를 잡아가며 무슨 말을 하면서 프로포즈를 했을까? 저 무뚝뚝한 남자가......”
라고 소영이가 말할 정도로 유교수는 입이 무겁다. 말을 꺼낼 때면 극히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을 하지만 필요한 최저한도의 말 이외는 하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언니는 이 사내에게 홀딱 반해 버렸던 것이다. 두 사람의 연애시절은 벌써 6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4살난 아들까지 두고 있다.
유교수는 원고를 반드시 약속 기일까지 썼었고 그걸 가지러 오는 언니에게도 정중했었다.
그는 그러면서 역시 이 미모의 머리 좋은, 출판사의 여직원에게 상당히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유교수는 중세기의 로맨스에는 통달하고 있었지만 20세기의 현실적인 로맨스에는 도통 무능한 상태였으므로 호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줄을 몰라 꼬박꼬박 정중히 대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럭저럭 지내다가 두 남녀 사이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던 것인지, 여차여차 의사소통이 간신이 이루어져 드디어는 본인들끼리 크게 만족하고 결혼에 골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말이지, 네 형부는 학기시험이 끝나 이제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신학기에 그 나대수 교수가 뭔가 또 부탁이 있다고 미리부터 괴롭혀 오는 거야.”
“이 번엔 뭔데?”
“그 교수 자신이 저술한 교과서를 네 형부가 강의하는 클라스에서도 채택되도록 해 달라는 거야. 물론 채택하지 않으면 그만 이겠지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쓸만한 교과서가 아닌듯 하다는 거야......”
“어머, 주책이야, 허기야 그런 교수는 여학생들에게 아예 인기도 없는걸......”
“얘, 그래도 닥 한 사람, 아주 충직한 여학생이 있는 모양이더라. 네 형부말에 의할 것 같으면 모드 아방가르드족 이라더라.”
“으응, 있어. 그런 족속이 있지.‘
어딘가 퇴폐적이고, 어딘가 실존적이고, 어딘가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아방가르드. 담뱃진이 손가락과 이에 배어 있고 옷은 항상 검정색 바지에 검정 스웨터를 입고 검은 베레모를 쓰고 다닌다. 머리카락은 야성적으로 길다랗게 너풀거리게 드리우고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으며 몸 전체가 멋대로 흐트러진 채로 하고 생활한다. 샌달도 뒷꿈치가 닳아빠진 그대로 마구잡이로 신고 다니길 좋아 한다.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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