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 찾아 떠난 학이 쉬었다 가는 살기 좋은 송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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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 찾아 떠난 학이 쉬었다 가는 살기 좋은 송월리
  •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09.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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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 <27>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홍성읍 송월리
▲ 송월리 주민들이 마을 떡방앗간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송월리 지명유래 
송월(松月)리는 홍성읍의 중심지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군청에서 청양방향으로 29번 도로를 따라 3.2km 따라가다 보면 홍동면 팔괘리와 경계한 지역에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삽교천이 흐르며 넓은 구릉지대가 있어 예로부터 사람 살기 좋다고 전해진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송월리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옆 마을인 학계리 2구의 구름다리 지역이 학 다리를 의미하고 경계지역인 홍동면 팔괘리의 만경산이 학 부리를 뜻해 학이 맑을 물을 찾아 거쳐 가는 곳이 송월리라고 한다. 송월리에는 3개의 자연마을인 죽전(竹田), 송암(松岩), 월천(月川)마을이 있다.

죽전마을은 송월리의 으뜸되는 마을로 대나무가 울창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송암마을은 죽전 북쪽에 있는 마을로 큰 소나무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송암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전인수 이장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적장의 어머니가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곳을 조심하라고 해서 마을에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월천마을은 죽전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내가 흐르고 뒤에 달처럼 생긴 산이 있다고 해서 월천이라 지어졌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냇가에 흐르는 달이 물에 비치면 운치가 있고 아름답다고해 월천이라고 불린다. 이 밖에 마을에서 불리는 지명으로는 산구지골, 영암골, 왕등고개, 웃골, 장고개, 테미, 학다리골 등이 있다.

▲ 송월리에 흐르는 삽교천.

송월리 역사
조선시대 홍주 주남면에 속했던 송월리는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홍양면에 편입되었고 1940년 홍양면이 홍성읍으로 개편되면서 홍성읍 송월리로 편제됐다. 삽교천 주변에 선사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고분들과 고려시대 미륵 등 다양한 유적들이 나왔다. 송월리에서는 백제시대 고분군, 청동기시대 석촉 출토지로 조사되었다. 주로 송월리 야산지대에서 발견되었으며 왕등고개 가는 길에 아직도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발을 세게 구르면 바닥에 빈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온 성씨로는 죽전마을에 파평윤시, 송암마을에 신평이씨, 월천마을에 청주이씨 순으로 입향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60가구 중 파평윤씨가 25가구, 신평이씨가 13가구 순으로 많다. 파평윤씨 10대 조상이 마을에 들어온 지는 500년이 넘었으며 현재 35대째 후손인 윤종천 노인회장, 윤종팔 노인회 총무 등이 살고 있다. 파평윤씨가의 묘역은 아랫뜸의 북쪽 골짜기에 비석과 함께 조성되어 있다. 신평이씨는 당진의 토착성씨로 충남일대에 세거하는 집안이었다. 청주이씨 역시 신평이씨와 비슷한 시기에 입향했다고 한다.

▲ 송월리 마을회관.

일제강점기 동네 젊은이들 중에 징용과 징병에 끌려가 고생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순사보다도 독하게 굴었던 ‘구장’이 있어 심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일제의 수탈은 심했으나 다행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좌우익이 번갈아 장악할 때 옆 마을에서는 피해입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나 송월리에는 아무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고 한다.

송월리의 추억들
송월리는 홍성장과 3.2km 떨어져 있고 광천장과는 12km 떨어져 있다. 장날이면 남자 주민들은 지게에 쌀가마를 지고 여자 주민들은 머리에 이고 쌀을 팔러 걸어 다녔다. 후에 우마차가 생기고 경운기가 생기면서 장터에 가기 수월해졌다.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 마을에 대동샘이 있어 식전에 두멍에 물을 부어놓고 밥을 짓고 세수를 했다. 비가 안 올 때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면 마을의 가장 큰 걱정거리기도 했다. 삽교천 정리 이전에 비가 많이 오면 2m 넘게 물이 차올라 홍동까지 물이 판판했었다고 한다. 외나무다리를 놓고 물가를 넘어다니던 주민들은 2003년 제방공사를 완공 후 물 피해 걱정이 없이 살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유년시절, 흐르는 삽교천에서 멱을 감고 고기를 잡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들판과 물가에서 뛰어놀았던 추억에 잠겼다.

▲ 추석을 앞두고 송월리 떡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빻고 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삽교천변으로 나가 쥐불놀이를 하며 홍동면 팔괘리 사람들과 경쟁을 하곤 했다. 서로 쥐불을 던지며 세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한데 어울려 즐기기도 했다.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돼지를 잡아 마을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풍물과 윷놀이를 즐겼다. 지금도 겨울철이면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 바둑, 장기, 윷놀이를 즐기곤 한다.

칠순잔치 등의 행사가 있을 때 마을에 있는 식당인 동굴가든이나 만수무강에서 치르기도 하고 회관에서 출장 부페를 불러 치르기도 한다. 동굴가든은 보신탕, 닭백숙을 전문으로 하고 만수무강은 어죽과 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마을에는 떡방앗간이 두 개가 있어 죽전입구에 들어서자 송월리 떡방앗간에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났다. 추석을 맞아 방앗간에서는 고춧가루를 빻느라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앗간은 주민들간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7~8명의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민들은 막걸리와 머릿고기를 즐기며 마을에 일어나는 일들과 농사이야기를 나눴다. 송월리 떡방앗간은 40년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이장의 마을소개
송월리는 60가구 120명의 주민들이 3개의 자연마을에서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주민들은 주로 벼를 주작물로 짓고 방울토마토와 고추, 대파를 특히 많이 키우고 있습니다. 홍성읍에서는 경지면적이 가장 큰 마을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기에 홍성읍의 ‘미래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을은 마을회, 부녀회, 청년회, 노인회 각각의 조직이 잘 돼있어 서로 협조하면서 원할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을 떠난 청년들도 모두 마을 청년회로 활동하고 있어 청년회원들이 30명이 넘지요. 겨울철이면 마을회관에 어르신들 40명 이상 모여 한 달에 5000원의 식비를 내고 점심식사를 공동으로 화목하게 하고 있지요. 나머지는 자녀들과 여기저기에서 찬조를 하니 겨울철 과일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식탁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부터 경지면적이 넓어 마을에 부농이 많은 관계로 자녀들 교육을 탄탄히 시켜 각지에 나가서 활약하고 있지요. 귀농·귀촌을 하려는 분들은 우리 마을로 오십시오. 마을에 정착해서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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