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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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8>
  • 한지윤
  • 승인 2016.09.30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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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의 집은 담장 너머로 정원수가 있었고 정적이 감도는 오래된 한옥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한훈찬씨가 마악 대문을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새빨간 다알리아 꽃다발이 들리워져 있었다.
그는 소영이의 얼굴을 발견하자 잠시 놀란 듯 하다 서슴없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잘 지냈나? 외교관 보이 프랜드는 그 뒤 계속 만나고?”
그가 나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남자 나쁜 사람 이예요. 아주 엉터리 녀석이죠.”
소영이는 침착하게 대답하고 나서 
“어디 나가시는 거예요?”
“음……근처 가까운 곳에 가볼 일이 있어서……아, 그런데 함께 갈수 있을지……”
“제가 따라가도 지장이 없으실는지……”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아저씨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분이세요.”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주위는 잡목림들과 밭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용한 교외 풍경 그대로였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저를 데리고 여행을 하셨는지……손목 한 번도 만지질 않고……”
한훈찬씨는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을 일이 아녜요. 여자로서 모욕을 당한 느낌이 들어요. 저는 여자로서의 매력이 충분히 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대답을 않을 수도 없겠는걸.”
한훈찬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는 한 점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숲 속에 있는 무척 오래된 절의 문을 들어섰다. 그때 까지도 한훈찬씨는 그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본당까지의 길은 이끼가 듬뿍 끼어 있었다. 사람의 인기척도 드물다. 멀리서 헬리콥터의 날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다. 
“여자로서 매력이 너무나 넘쳐날 정도지, 그 매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여기에서 내가 얘기해도 좋을까?”
“네에.”
갑자기 소영이의 온 전신은 긴장감이 뻗쳐 갔지만, 그녀는 선뜻 그렇게 대답했다. 
한훈찬씨는 꽃을 들지 않은 손으로 소영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는 소영이를 끌어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나에겐 외아들이 하나 있었지. 그런데 반년 전에 죽어버렸어. 엄하게만 길러 소영이 같은 연인이 있는 것도 허용해 주질 않았어. 난 말이야……”
“자살?”
“아니 자살은 아니지만, 사고로 그만……”
한훈찬씨의 손에 들린 채 소영이의 뺨에 닿아 있던 다알리아가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한훈찬씨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살아 있는 동안 관대하게 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는데.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못해 주었는지를……이젠 이미 다 지나가 버린 일이야. 늦었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요일마다 아들 녀석의 묘에 꽃을 갖다 바치는 일 뿐이야. 그래서 소영이 같은 아가씨가 그렇게 간절히 브로치를 갖고 싶어 하는 걸 보고 사 주게 된 거야. 남자 친구가 생기면 그걸 지켜보아 주기로 하는 거지……속리산에서 소영이가 밤늦게 내 방에 살그머니 들어온 것을 알고 있지. 사실 난 걱정이 되어 잠을 자지 않고 있었지만, 그걸 알면, 소영이가 또 다른 의미에서 두려워 할 거라고 생각되어 자는 척 하고 있었던 거야……”
“죄송해요, 정말로……그렇지만 무조건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귀여워만 해선 안 되죠, 나중에 후회가 되더라도 역시 자식에게는 엄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되죠……”
소영이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그것은 무언가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이제 소영이는 한훈찬씨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럴까?”
“저도 묘에 가도 괜찮겠죠?”
“아……물론 땅속에 있는 아들 녀석이 깜짝 놀라겠지. 아버지가 생판 모르는 예쁜 아가씨하고 함께 찾아 왔다고 말야……”
두 사람이 걸어갈 때에, 돌계단 위로 드리워진 다알리아꽃 그림자가 꽃향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피서지에서 생긴 일·1
9월 5일쯤의 일이었을까, 피서객의 무리가 거의 다 떠나버린 속리산에서 소영이는 혼자 남은 적이 있었다.
혼자 남았다고 하더래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단 혼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친구의 별장에 묵고 있었는데, 친구네 집안이 모두 철수해 버리고 난 뒤 늦 피서를 온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 네 식구가 그 별장에서 여관으로 옮겨 든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위가 한창일때 바캉스를 가고 싶었지만 마음 놓고 집을 비워 둘 수도 없고 해서 늦더위 무렵에 그런대로 2, 3일간 정도 예정을 잡은 소영이네 일가였다. 9월 초순 무렵의 피서지는 한산해서 숙박할 곳도 그다지 번잡하지 않아 좋은 것이다. 휴가는 비록 짧은 2, 3 일간의 나들이지만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로부터 빨리 해방될 듯한 마음의 여유도 얻게 되는 것이다. 가을 기운이 감돌고 있는 피서지는 어딘가 쓸쓸함을 안겨 주는 듯 하지만 오히려 이 때가 더 시원스러워서 소영이네 일가는 1년에 며칠간의 가족휴가를 이 시기에 맞춰 속리산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영이 에게 있어서는 가족과 함께 이틀 동안이 결코 즐거운 것이 못 되었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귀찮은 존재인 것이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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