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적 장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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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장난<1>
  • 윤장렬 칼럼위원
  • 승인 2017.01.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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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9일 베를린의 한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발생한 트럭 사고는 12명의 사망자와 55명의 부상자를 낳는 대형 참사였다. 독일은 물론 국제사회가 이번 사고에 경악했고, 베를린에 거주하는 필자 본인에도 현실적인 공포로 인식되었다. 사건 당일 늦은 밤, 한국 시각으로 이른 아침, 사고 뉴스를 접한 한국의 지인들이 필자의 안부를 묻고자 연락을 했다.

그런데, 이들이 필자에게 묻는 안부에는 모두가 ‘베를린 테러’라는 우려가 전해졌다. 사건 발생 현장에서 독일 검찰과 언론이 실시간으로 전하는 ‘트럭 사고’가 필자에게는 당시 일반적인 사고로 인식됐는데, ‘베를린 트럭 테러’라는 뉴스를 접한 한국 사람들은 동일한 사건을 ‘테러’로 규정,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베를린 사고 뉴스를 전하는 한국 뉴스를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 현지에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는 연합뉴스와 한국의 대형 언론사들이 베를린의 트럭 사고를 ‘트럭 테러’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독일 경찰과 정부 당국은 사실 사건 당일 ‘테러’라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이는 사건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불분명한 사고의 원인을 한국 언론이 테러라고 확정, 보도하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연합뉴스와 몇 개의 대형 언론사가 만들어낸 오보는 인터넷 매체에서 무비판적으로 재생산, 확대되었고, 출근길 뉴스 속보에서는 ‘베를린 테러’가 전해졌다.

정작 독일 정부는 사건 발생 후, 다음날 IS가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자신들이 있다는 온라인 발표가 있었지만, 여전히 이들은 ‘테러’라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독일의 주요 일간지들과 시사 주간지들은 검찰과 정부 발표에 충실한 보도를 이어가며, ‘테러 의혹 사건’ 또는 ‘트럭 사고’로 전했다.

반면 황색 저널들은 사건 발생 즉시 인터넷신문에서 ‘테러’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다음 날, ‘테러’라는 제목의 기사를 현장 사진과 함께 1면 보도했다. 이같이 섣부른 ‘테러’ 규정은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베를린 사고 당일 자신의 트위터에 ‘테러 공격’이라는 우려를 표했고, CNN은 사건의 사실 보도보다 ‘테러 현장’에 미국인들의 여행을 금지하는 속보 뉴스를 전했다. 모두가 ‘테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한국 언론이 ‘트럭 테러’로 보도한 이유는 아마도 CNN 보도를 접한 특파원의 오보일 가능성으로 생각된다. 영어 만능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기자가 되고, 특파원으로 현장에 파견될 때, 영어 외에 현지 언어를 구사하는 특파원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통신사와 대형 언론사가 생산하는 국제뉴스는 영어 번역 전문가들이 신문사에 고용되어 사건 소식을 영문자에서 국문자로 전하는 게 전부이다. 사건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자국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담아내는 국제 뉴스는 극히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현장에 나가 있는 특파원들도 CNN과 BBC 그리고 영어권 통신사들의 뉴스를 바탕으로 취재, 보도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계속>

윤장렬 칼럼위원<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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