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순환도로 개설을 꿈꾸는 소향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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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도로 개설을 꿈꾸는 소향1리
  • 글= 박현조 전문기자/사진= 김경미 기자
  • 승인 2017.06.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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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2>

농촌마을 희망스토리 - 홍성읍 소향1리 마을을 찾아서
광덕사지 3층석탑(홍성여중) 모습.


□ 소향1리 가는 길 <자가용 3,1km 직진 8분 소요>
 홍주신문사(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앞 출발-홍성세무서 앞-세광엔리치타워아파트-홍성여자중학교-소향길 92번길 앞에 가면 마을회관 본동이 보인다.

□ 역사 속의 소향1리마을
 소향1리는 백제의 금주군에 속했으며 신라시대에는 해풍현에 속했다가 고려 때는 홍주의 관할에 있었다. 조선 초엽에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에 홍주군 주북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마동, 소동, 월계리, 북촌리, 교동과 향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해 소향리라고 하고 홍양면에 편입됐다. 소향리라는 지명은 당시 소동과 향산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그 후 소향리는 시목골과 참샘골에 한국전쟁의 피난민들을 집단 거주하게 하면서 1965년 소향1리와 2리로 분리됐다. 그리하여 향산과 소동을 소향1리라 하고 청기동을 소향2리라 했다.

□ 소향리에 터를 잡은 순창임씨
 소향1리는 오래전부터 순창임씨가 터를 잡고 세거한 마을이었다. 소향리의 소쇠굴이라  불리던 소동마을은 일찍이 전 씨들이 세거했고, 향산은 순창임씨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향산에 순창임씨 제실이 있어 매년 음력10월 시향에 참여한다.

□ 마을 유적과 민속
<광경사지 3층 석탑> 광경사지 3층 석탑은 광경사의 옛터에 당간지주 옆에 있던 석탑이었으나 1914년 일본인이 자기 집 정원으로 옮긴 것을 다시 홍성여중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것이 광경사와는 관련이 없으며 다른 곳의 절터에서 옮겨진 것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현재는 홍성여중 안쪽 입구에 세워져 있는데 기단부와 3층의 탑신부 만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1985년5월17일 충청남도지정문화재자료 159호로 지정됐다.

<백월산 청년과 결혼한 소향처녀> 지금의 소향리가 소향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 데에는 소향이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가 백월산 청년과 혼인한 전설에서 비롯됐다. 옛날에 용봉산과 백월산에는 소향이라는 처녀를 사모하는 청년이 각각 살고 있었다. 이때 두 산의 청년들은 돌 던지기 시합을 해 이긴 사람에게 소향을 양보하기로 약속했다. 두 청년의 돌 던지기 시합은 여러 날이 계속됐지만 승부가 나질 않았다. 결국 백월산에 사는 청년이 용봉산에 사는 청년보다 돌을 많이 던져 시합에서 이기게 되자 약속대로 소향처녀와 혼인하게 됐다. 그리하여 백월산보다 용봉산에 돌이 더  많은 것이라고 전해지며, 소향리는 이 처녀의 이름을 따서 소향리라 했고, 백월산에 살던 청년이 소향처녀를 데려갔기 때문에 소향리가 홍성읍에 속하게 된 것이라 한다.

□ 마을의 구성
 소향1리는 현대적인 도시와 전통적인 농촌 마을이 공존하고 있다. 인구는 482명(남245,여237명), 211세대(농가100, 비농가111세대)로 구성돼 있으며, 마을회관은 2개소(향산마을, 소향1리 본동)를 활용하고 있다.
 

탄탄대로(坦坦大路) 꿈이 이루어 지는 날

홍성군 북부외곽순환도로 소향1리
개통하는 날 오리라

임이 오시는 날

옛 소향리 병막이, 화장터, 붉은 고개,
공동묘지라는 이름위에

소향1리
꿈의 터전이라

부르리라

부르리라!

-시인 박현조
 

□ 소향1리 마을 사람들
 

김연호(64,부녀회장), 홍우석(64,홍여고 교직원)부부
 지난 23일 아침부터 긴 가뭄으로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소향1리 부녀회원(28명)들은 꽃길 가꾸기, 어르신 점심 대접 준비로 분주했다. 김연호 부녀회장은 ‘20년 동안 부녀회활동을 하고 있다며, 이웃의 어려움을 내 가족처럼 사랑하는 회원들의 협동심을 강조했다.’ 또한 가정에는 ‘4대가 함께 모여 열한명의 대 가족을 이루고 이 지역의 최장수 강채운(95) 어르신 이 어머니를 건강하게 모시는 효부’로 회원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강채원(95,부녀회장 시어머니) 최장수 어르신
 강채원 어르신께서는 ‘미혼인 손녀딸이 같이 살면서 말벗이 돼 주고 있어 고맙기는 하지만 좋은 신랑을 만나서 시집갔으며 좋겠다’며, “지금도 밭에서 일하고 왔다”며 건강을 은근히 과시했다.

천용위(77,전신마비 장애인) 아버지와
천하수(48,뇌성마비 장애인) 아들 가족

정부지원금으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늘 외롭다. 언어 장애가 있어 표현을 잘 못한다. 주위에서 도움을 주지만 피부로 느끼는 사랑은 언제나 부족하다. 김응복(69) 이장이 동행해 주면서 ‘마을에서 도배를 해준다던지, 사는 집도 무료로 김의묵 노인회장 어르신의 배려가 있었지만 물질적인 도움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안타깝다’며 소외된 계층의 보살핌을 강조했다.
 


김의묵(80) 노인회장
 김의묵 노인회장님은 ‘노인회원은 51명으로 80세가 넘는 어르신이 15명(29%)이며, 90세가 넘는 어르신이 6명(11%)으로 늘 여가를 마을 회관에서 같이 즐긴다고’ 했다. 또한 벽돌 공장을 2개소에서 운영하며 사업도 키우고, 불우이웃 돕기에 앞장서기도 하는 지역 사랑에 애정이 깊은 어른이시다. 
 


김응복(69,전 농촌지도소 서부면 상담소장) 이장
 김응복 이장은 ‘인근 마을에 비해 지역이 넓어 어려움이 많지만 언제나 지역 주민들의 협조로 소향1리 지역은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안 사항으로 ‘홍성군 북부외곽도로(폭 32m, 4차선)가 소향1리 마을을 관통하게 돼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지금은 옛 화장터, 병막이, 공동묘지, 붉은 고개 등 혐오시설 지역이었다는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마을에 계획도로로 지정돼 있어 발전에 장애가 많았다‘며 빠른 시일 내에 숙원사업이 착공되기를 기대했다. 또한 발전 장애요인으로 ‘홍성여자중학교 주변 문화재관리지역(광덕사지 3층 석탑)과 보존녹지지역으로 묶여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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