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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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변비
  • 백정자 수필가
  • 승인 2017.07.0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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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공기 모양 덩어리 열댓 개가 방바닥에 나뒹군다. 할머니 손이 기저귀속에 들어가 있다. “이게 뭐예요 할머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죠.” 치매가 심한 할머니는 가끔 작고 동글동글한 대변 덩어리들을 방바닥에 던져 놓는다. 할머니가 양손에 대변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손을 펴서 닦아 드리려고 하는데 “이것 내 거야” 소리를 지르며 요리조리 피하신다. 할머니와 한판 씨름이 벌어진다.

겨우 손에서 대변을 빼내고 항문에 남아 있는 잔변도 파내고 따뜻한 소창으로 항문 찜질까지 하고 보니 옷이며 침대 시트에 이불까지 대변이 묻어있다. 대야에 물을 떠다가 손발을 씻기고 주변 정리를 하고 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마워 고마워요.” 하시며 소녀처럼 해맑게 웃으신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휴게실로 돌아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할머니가 또 나를 부르신다. “나 좀 봐~~나 좀 봐~~”잰걸음으로 달려가니 “밥은 언제죠, 배고파!” 하신다. 속을 비워냈으니 허전한 모양일까? 또 뭔가를 채워야 하는 모양이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비워내는 일이 중증 치매로 입원한 할머니의 일상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채움과 비움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몸은 음식으로 채우고, 머리는 지식으로 채우고, 가슴은 따뜻함으로 채운다. 장에서 소화된 음식은 우리 몸에 영양소를 공급하여 살아가는데 에너지를 주고, 지식은 살아가는데 지혜를 주어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를 돕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 가슴에 채워두었던 따뜻한 마음은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고 세상의 차가움을 녹여낼 수 있는 온기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무병장수하는 방법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라고 한다는 항간의 말이 있다. 이 말은 전통, 현대 의학에서도 인정되어 온 말이며,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이 소화된 찌꺼기를 잘 내보내는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설의 쾌감을 삶의 기쁨이라고 설파하면서 배설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건강한 사람은 하루에 한 번쯤 배변하는 것이 기본이다. 젊은이들은 건강하여 배출에 문제가 없다지만, 노인들은 몸의 기능이 떨어져 그렇지 못하다. 나이가 들면 장의 연동 운동이 약해져 찌꺼기를 밀어내는 힘이 부족하므로 항문을 잘 열고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옆에서 도와주어야만 한다. 변비약을 먹이거나 좌약을 항문에 넣어 배설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마저 되지 않으면 손으로 파내주어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노인이 배가 불러오고 아프다 하시면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또 식사량이 줄고 먹을 것을 거부한다면 배변 상황부터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요양원에서는 변을 보고 사오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면 어르신들에게 새벽에 변비약을 드시게 한다. 식전에 약을 드리면 대부분 낮에 해결이 되지만 하루가 지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파내 드린다. 그래야만 정상으로 식사하시고 보채지도 않고 잠도 잘 주무시기 때문이다.

우리 몸을 이롭게 하는 것들도 때가 되면 찌꺼기가 되어 몸을 해롭게 할 수 있다. 어쩌면 나도 내 속에 버려야 할 것을 끌어안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더부룩하고 소화되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어 채울 수 있는 빈 곳을 만들어야겠다. 머리에 들어간 지식은 지혜가 되어 삶을 이롭게 해야 하지만, 뒤처진 지식만을 고집한다면 숙변처럼 굳어져 우리의 삶을 해치게 될 것이다. 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먹는 음식도, 우리의 지식도, 뜨거운 가슴도 삶을 이롭게 하고 사회를 따뜻하게 하지 못한다면, 굳어지기 전에 빨리 비워내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아이가 성장 과정 중에 대변을 조절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항문기를 거친다 한다. 사람이 나이 들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귀한 보물이라도 만들어내듯 공기 모양의 대변 덩어리들을 낳아 놓고,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고 방바닥에 뿌리거나 베개 속에 묻어 두기도 하며 놀이를 즐기는 할머니를 보면서, 왠지 내 마음도 굳어진 것들을 내려놓고 말랑말랑하며 유연해짐을 느낀다.

오늘도 할머니는 식사 도움이나 기저귀 도움을 받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나도 감사함을 아는 노인으로 늙고 싶다. 바다로 나아간 연어가 때가 되어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듯 할머니가 해맑은 아이가 되어 맑고 환하게 웃으신다. 그런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백정자<수필가·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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