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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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본
  • 유애선 수필가
  • 승인 2017.07.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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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이 지나자 온 대지 위에 꽃이 피고 잎이 열리는 모습들이다. 죽은 가지와도 같았던 나목에 꽃망울이 달리는가 하면 연둣빛이 감돌고 논 밭둑에 잘디잔 이름 모를 꽃들이 수를 놓는다.
요즘같이 미세먼지가 많고 소음공해가 심해도 세월이 흐르니 피고 지는 나무들, 때가 되자 촉촉한 봄비 한 번 맞지 않았어도 조용히 눈을 뜨는 모습들이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 밖에서 맑고 청아한 새 소리가 들린다. 겨우내 조용하더니만 봄으로 들어서자 벌써 계절을 노래하는 어여쁜 새들, 조용히 대문을 나섰다. 이게 또 웬일인가. 하늘이 뿌옇고 주위도 온통 미세먼지인지 아니면 황사인지 아침부터 야단이다.

봄 햇살이 아침을 열기도 전에 반갑지 않은 손님 아닌 불청객이 동네에 가득하다. 그래도 슬슬 바깥마당을 질러 밭둑으로 올라섰다. 벌써 냉이는 꽃대를 내밀고 여기저기 새싹들이 천국을 이루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는 이미 망울을 터뜨려 봄맞이 하고 있다. 날씨와는 상관없이 철따라 자기의 본분을 말없이 다하며 살아가는 나무와 풀들. 종일이면 종일, 연일이면 연일, 바람이 부는 대로 공기가 탁한 대로 주어지는 그날에 최선의 모습으로 살면서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신비와 생명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하늘에 머리 두고 대지에 뿌리 내린 채 침묵하며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는 그들의 정령을 나는 존중한다. 우주의 질서를 조금도 거스르지 않는 삶, 대가가 없어도 온 땅을 예쁘게 가꾸는 일상,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바로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호흡하고 있지 않는가? 신의 뜻에 온몸을 맡기는 건 자연뿐 아니라 우리도 그리 살아야 한다.

지금이 삼월 하순, 봄볕이 따사로우며 농군들은 여기저기에서 나무를 심고 전지를 한다. 묵은 밭에 거름을 피기도 하는데 더우면 더운 대로 바람 불면 바람을 맞으며 나무와 자연처럼 역시 주워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농군들이다.

슬슬 농사일이 시작되는 요즈음 기다리는 봄비는 언제나 오려나. 예전에는 솔솔 잘도 내리더니만 수 년 전부터는 극히 소량으로 변하였다. 이상기온은 해가 갈수록 심하다. 고통을 겪는 이들은 당연히 시골 사람들이다. 올해도 비를 기다리던 동네꾼들은 끙끙 물을 길어다 밭고랑에 주고는 봄감자를 심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 뒤편에 천여 평 넘는 석재형님네 밭이다. 해마다 거기에 봄감자를 심어 판매해 왔는데 너른 밭에 물을 주자니 엄두가 안 나고 어제는 그 밭에 트랙터가 들어서서 갈기를 시작하자 얼마나 흙먼지가 많이 나는지 얼른 피해야 했다.

우리나라 남쪽지방에는 그냥저냥 봄비가 내린 듯 한데 이곳 충청도는 겨울에도 눈이 적게 내린데다 봄이 되면서 가뭄만 계속되었다. 그러니 무슨 봄 작물을 심었겠는가. 앞으로는 농사짓기가 더 어려울 거라는 동네꾼들의 이구동성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하늘이 도와야지 사람 힘으로는 다 뭇 허지.”한다. 그렇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이다. 인간의 능력이 하늘을 찌르고 달나라를 정복해도 문명에는 반드시 이기가 있기에 우리는 그 질서를 아니 순환의 흐름을 어길 수 없다. 주고받는 인간사. 이것도 신이 내린 법이며 삶의 기본이다.

텃밭 둑을 거닐면서 이웃들을 살피다가 건너편에 있는 아저씨 집으로 시선이 머물렀다. 아저씨 집 옆에는 오래전부터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그 안에서 고추모를 비롯하여 각종 채소 그러니까 육묘장이다. 온갖 작물들이 그곳에서 자라다가 밖으로 나오며 상추는 사철 이웃들의 밥상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런데 아저씨 연세가 올해로 92세, 등은 바짝 굽었고 아주머니 역시 호호백발이시다, 내가 시집오던 해에 그 집을 지은 후 이사를 왔고 오십대 이셨는데 그때부터 아저씨 아주머니로 부른 존칭이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까 작년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었다. 아저씨네 비닐하우스가 어느 날 갑자기 비닐이 걷히고 쇠창살만 앙상히 남았었다. 하도 이상하여 웬일이냐고 물으니 도시에 사는 큰아들이 와서 내년부터는 농사를 짓지 말아야 되기에 하우스부터 없애야한다며 비닐을 다 뜯어버렸다고 한다. 그런 후 겨울이 되어 삼동을 잘 보냈는데 요즘 다시 뼈대인 쇠창살이 덩그렇게 비닐 옷을 입고는 아저씨 아주머니를 바쁘게 만들고 있다. 궁금하여 영문을 묻자 “아니 내가 평생 배운 게 농산디 손에서 일을 놓으먼 촌이서 하루 죙일 뭘 허라는겨? 죽을 날만 기다리라는겨? 그러잖어두 시골에 일 헐 사람이 웂어 야단인디, 먹구 노는 건 빌어먹을 짓이여어.”

아저씨의 말씀이시었다. 사실 아저씨 아들은 구십 넘으신 아버지가 조금 편하게 사시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우스가 없어지면 일도 허름하고 그러면 당연히 부모님은 일에서 멀어지려니 했는데 어디 그런가. 눈만 뜨면 농사일로 흙 만지며 살아온 구십 평생, 손 놓고 어찌 살 수 있을까. 이건 누가 봐도 어불 성실한 처사였다.
 
건너다보니 아침부터 두 노인네가 새로 옷을 입은 하우스에 들락날락 아주 분주하시다. 저렇게 아침 일하시고 들어가면 아침밥이 꿀맛일 게다. 하우스에서 길러진 야채와 작물은 순박한 노부부의 건강 지킴이고 텃밭과 하우스는 이분들의 평생 맞벌이 직장이시다.
 
주워진 습성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삶의 가치와 무게를 온전히 흙에다만 의지하였으니 어찌 다른 길이 있겠는가? 기본적인 진리로 평생 농촌의 평화와 고요와 자연의 방식을 누린 생애의 노을빛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

유애선<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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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지 2020-09-13 08:01:08
맞습니다.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지만 그렇다고 일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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