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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잿날 기우제를 지내는 광성3리 마을 사람들
  • 글=박현조 전문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07.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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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전경.

■광성3리 마을 가는 길<자가용 29분 소요>
홍주신문사(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앞 출발-월산로50번길-법원로 군청방면이동-충서로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방향 이동-옥암2교차로 충서로 홍성경찰서 보령방면으로 이동-남장로 홍동 장곡 청양방면으로 1.1km이동-홍장북로 10.8km이동-상송삼거리 홍남도로 광천 남당리 방면으로 이동-장곡길 4km이동하면 장곡면 광성3리 마을회관(장곡길416번길104)도착.


■역사 속의 광성3리 마을
광성3리는 백제, 신라, 고려 시대의 여양현 고을 터가 있던 곳이고, 한말 오사면의 중심이 광성3리였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마을 곳곳에는 옛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백제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석실묘를 비롯해 야철지와 요지가 확인되며 백제 때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인 내원사도 있다.


■마을의 성씨
광성3리 사람들 중에는 나주김씨, 대구서씨, 경주김씨, 밀양박씨, 창원황씨 등이 거주하는데 제일 먼저 들어 온 성씨는 심씨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그 후손이 살고 있지 않다.

마을회관.


■오사면의 옛터
지금의 장곡면은 조선시대의 유곡면, 오사면, 성지면, 얼방면 지역을 통합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면임이 면의 호적과 공공사무를 맡아보는 면의 중심마을이 있었는데 오사면이 있던 곳이 바로 광성3리였다.


■마을 유적과 민속
<내원사(內院寺)>=마을의 남쪽 깊은 골짜기 안에 작은 사찰인 내원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6년에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법명대사는 백제 665년 의자왕 15년에 법명대사가 일본 대마도에 건너가 오음으로 유마경을 독송·강론했으며 일본에서 오음으로 불경을 전파해 명성을 날렸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용잿날 기우제>=광성리로 쭉 뻗어내린 오서산 산줄기가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예로부터 이 일대에는 용의 몸통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용배들, 용호리, 용구녕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명당의 기운이 뭉친 용혈을 산 중턱의 용잿날이라 불렀다. 용잿날은 오서산 자락에 기대어 사는 장곡면과 광천읍 사람들 모두에게 신성한 장소였기에 가뭄이 들면 면장이나 군수가 찾아와 기우제를 올렸다.

<광성3리 사람들의 용깃대>=농기계가 없던 1940년대에는 논농사를 위한 품앗이가 일상적인 일이어서 두레가 나서면 ‘오사면 광제리’라 쓰인 용깃대에 줄을 매서 붙잡아 들고 풍장을 치며 동네 남자들이 함께 일을 도왔다. 두레는 6·25한국전쟁 후에 전통이 끊겼고, 이때부터는 논 주인이 직접 일꾼을 구해 농사일을 했다.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펜션.


■광성3리 마을의 구성
광성3리는 광제(廣濟)라고도 하며 오서산 자락이 감싸 안은 마을로 장곡면의 남서쪽 끝이며 청양군 화성면과 접경지이다. 오서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을 가운데 두고 윗말{윗뜸}, 아랫말[아랫뜸]로 구분되며 양쪽에 자연 마을이 형성돼 있다. 오서산의 북향사면으로 깊은 골짜기가 많고 산골에는 흐르는 물이 풍부해 곳곳에 맑은 샘이 많아 예로부터 물 걱정이 없었다. 광성3리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논농사와 밭농사로 벼농사 외에도 콩, 딸기, 쪽파, 채소 등을 키우고, 마을 부녀자들은 부업으로 삼베길쌈을 했으나 너무나 고된 일이라 어느 시기에 중단됐다. 인구는 83명(남44,여49명), 40세대가 있다.


■장곡면 광성3리 마을 사람들
<황지순(60)광성3리 마을 이장>
황지순 이장님은 “가뭄으로 아직 모를 내지 못한 농가가 있다“고 하면서 농촌지도소에서 정년을 한 서일석 노인회장 댁을 방문해 소개했다.

<서일석(85) 노인회장, (전)농촌지도소 장곡면상담소장>
서일석 노인회장은 “광성3리 노인회원은 40명(남8, 여32명, 마을 인구의 41%)으로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늘 회관에 모여 여가를 활용해 점심식사를 하고 있으나, 여름철 더위에 선풍기, 운동기구 자전거, 그네 시설이 없어 지원이 아쉽다. 또한 다랑이 논이 지질 특성 상 자갈 천수답으로 샘이 나지 않아 차라리 목초용 초지를 조성하는 등 다 방면으로 검토해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고 했다. 서일석 회장은 1995년도 마을에 처음 대중버스가 통행하도록 앞장서 추진했다고 주위에서 전한다. 과거 집에서 물레방아를 사용하던 절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낙운(59) 내원사 주지 스님>
국가전통사찰 지정69호 내원사 주지 스님은 “내원사는 조계종 수덕사 말사로서 백제 의자왕 16년에 법명대사가 창건했는데, 그간 깊은 산속이라 신자수도 적어 재정이 열악해 사찰 보존이 많이 훼손됐고, 원인 모를 화재로 1995년 소실됐다. 당시 지하에서 발견된 청동불 일부가 보존돼 있다. 그밖에 많은 문화재가 주변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나 관련 제재 규정이 많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 이를 승낙해 발굴토록 지원했으면 한다. 또한 훼손된 부분에 대해서는 보수공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문화재 발굴과 문화재로 등록을 해 관리해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오서산 줄기 용젯날 기우제

긴 가뭄 비집고
벅찬 기쁨

물의 소리
들린다

오서산 줄기 용의 날개를 펴고
광성3리 마을 가슴에 품으며

다랑이 논 기우제를 지내는
민속전통이 살아 있는 신성한 마을

빛으로 일어나소서

영원하리라!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박현조 전문기자/사진=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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