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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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신경전
  • 이미나<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회원>
  • 승인 2017.07.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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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은 딸을 보내고 가을볕은 며느리를 보낸다”는 말이 있다. 며느리는 딸 같을 순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서른 중반이 넘어 늦깎이 신부가 된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인생선배가 되어 간간이 시어머니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어머니들의 공통점은 당신의 아들이 최고 이며 못 말리는 아들 바보라는 것이다. 얼마 안 된 새댁이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도 근거 없는 말이 아님을 체감한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며느리로써 나를 예뻐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다. 당신아들이 40세 넘은 노총각이었으니 이제나 저제나 아들의 배필을 손꼽아 기다리시던 차에 나를 만났으니 어찌 안 기쁘셨겠는가. 처음 인사드리던 날 어머니는 하회탈 같은 얼굴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나를 사정없이 토닥이셨다.
나 역시 50세도 채 안 돼 홀로 되셨다는  어머니에게 효도해야겠다는 마음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찾아뵙고 저녁을 차려드렸다. 자주 보니 미운 정 고운정이 들어 시댁이 그렇게 불편한 곳만은 아니었다. 흡족한 마음에 우리 막내며느리가 만든 음식 같이 들자며 동네 지인에게 권하는 것이 두말필요 없는 며느리 자랑이며 사랑이셨다. 어머니는 매 주 어머니 댁에 방문하려 미리 전화를 걸면 “그래 오늘은 무슨 음식을 해주려구”하며 생일파티를 앞둔 어린아이처럼 들뜬 음성으로 응수하시곤 했다.
직장에서 퇴근한 남편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전부터 해오던 농사일을 하다가 7시가 다 될 무렵에야 땀범벅이 되어 들어오고 어머니 또한 햇볕에 잔뜩 그을린 모습으로 장화에서 흙을 떨어내며 현관으로 들어선다. 차례로 샤워를 하는 동안 가스 불 위에 놓인 된장찌개는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트위스트를 춘다. 네모 썰기 두부도 장단을 맞춘다. 정을 가득 담은 넓고 깊은 그릇에 꽃처럼 피어오른 찌개를 보면 언제고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함께 목 줄기로 한 수저 넘기며  하루의 수고를 위로 받듯 평온해 지신다. 나물반찬에 양념으로 넣은 참기름은 풍미를 더해주고 세 사람의 오붓한 저녁식사는 한껏 무르익곤 한다.
맛있는 식사를 마련하고 말 재미있게 하는 며느리가 예뻐 보이셨는지 수확 끝나면 벌어들인 보배 같은 돈으로 내게 용돈을 쥐어 주시곤 하신다.
하지만 못 말리는 아들 사랑으로 가끔은 세상 어디에 당신 아들보다 더 귀한 며느리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시기도 하나보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어머니는 당신 아들이 좋은 조건을 가진 아가씨 집서 사위 삼으려도 했다는 말씀(?)을 가끔 하셨다.
그러 던 것이 몇 번 못 말리는 아들 자랑을 하셨고 듣고 있던 나 역시 그에 응수하게 된 것이다.
모처럼만에 시누와 어머니와 식사자리에서 결혼 전 나를 며느리 감으로 염두에 두었다는 집이 있어 소개로 몇 번 만나 본 남자의 사진(카페에 실린 단체 사진)을 어머니와 시누이 앞에 용감하게 내밀었다. 게다가 묻지도 않은 사진 속 남자의 모 대학 과 수석 졸업이라는 이력과 큰 키와 몸무게까지 소개해 주었다. 그 집서 그토록 나를 며느리로 원했다며 왕년에는 나를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내가 다 거절(?)을 했다며 너스레를 떨어댄 것이다.
어머니와 시누이는 태연하게 “그랬구나”하시더니 식사를 하셨다. 화를 내면 진다는 불문율을 서로가 잘 알았기 때문이리라. 쌍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식사를 마쳤다.
그러고 나니 속은 시원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불쏘시개를 제공한 격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며칠도 채 안 되어 깨달았다. 그 날도 저녁을 하러 어머니 댁 주방을 들어섰다. 어머니는 아들이 총각 일 때 사위 삼고 싶었던 집이 있었다며 그 집 딸이 경찰이었다고 넌지시 흘리신다. 자세가 일시에 뻣뻣이 굳었다가 쫘 악 손에 힘이 빠졌다.
독이 오를 때로 올라 나는 어머니께 따졌다. “어머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아요. 아들을 저랑 맺어 주신 게 그렇게 아쉬우시면 그 집으로 보내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대뜸 “너도 했잖아.”
“어머니가 먼저 계속 신랑이 일등 사윗감(?)이어서 더 좋은 자리로 갈 수 있었다고 하셔서 저도 화가 나잖아요” 그간 여자들의 은밀한 속내가 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시어머니는 성이 나셔서 말대답한 며느리에게 지청구를 하셨다. 신랑은 시끄러워진 주방으로 나와 어머니에게 한마디 하자 잠잠해 지셨다.
나는 무작정 집을 나가버렸다. 밖은 찬바람이 끝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방금 전의 감정의 임계점을 겨우 버티며 낸 것에 한숨을 돌리면서 잰 걸음으로 농로를 밟는다.
조그만 교회지붕 십자가가 애처로이 서 있고 새들은 어지럽게 첨탑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미나 씨” 헐떡거리며 뒤를 쫓아온 건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별 다른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렇게 한동안을 손을 맞잡고 걷고 있는데 남편에게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온다.
“에미 좋아하는 쇠고기 떡국 끓여 놓고 있으니 얼른 오너라.”
아마도 주방에선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를 보며 어머니 또한 무안한 미소만 띄우고 계실게다. “식기 전에 어서 들어라”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건네시려는 듯하다.
멀리서 평소 신랑이 흘려 말하던 마을 지인이 묵은해의 잡초를 태우고 있었다.
“이젠 지난날의 잡초는 다시는 보이지 않겠네”하고 중얼거리자 신랑은 영문도 모른 체 맞장구를 친다. 조금 있으면 고개를 내밀 옅은 빛의 풀이 또렷해지도록 함께 지켜보자 했다. 남편도 내 마음을 안 듯 잡은 손을 더 꼭 잡아 주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도 괜시리 “뭐하냐 떡국 식는다”하시며 며느리를 다독이실 터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이미나<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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