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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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이원기 칼럼위원
  • 승인 2017.08.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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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이 올라 30일에 막을 내린 연극 ‘1945’는 그 혹심했던 찜통더위도 아랑곳 않고 찾아 준 관객들로 연일 만원사례를 기록하며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작품 속에 대체 어떤 놀라운 얘기가 담겨 있기에 그악했던 폭염조차도 꼬리를 내리게 만들었는가? 작가 배삼식의 의도를 잘 살린 연출자의 공도 있겠고 극의 주인공 명숙과 미즈코역을 맡은 배우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호연도 그 공연을 성공시키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TV드라마, 극영화, 연극 등 모든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째 요인은 극본 자체이다. 극본이 좋지 않고는 결코 흥행에 성공 할 수가 없다.
극은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허기를 달래려고 떡을 허겁지겁 먹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조명이 밝아지면 명숙과 미즈코가 보이고 명숙이 일본말로 돈을 세면서 떡 값 10엔은 자신이 냈다며 꼬깃꼬깃한 지폐를 미즈코에게 건넨다.
그들은 일본이 패망하자 위안소에서 풀려나 만주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에 온 것이다. 그러나 명숙과 달리 일본인인데다가 이렇다 할 증명서도 없는 미즈코는 자기도 데려가 달라며 명숙에게 애걸한다.
그녀가 오카다라는 사내의 애를 배었고, 그 사내는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숙은 차마 미즈코를 밀쳐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구제소 사람들에게는 미즈코가 자기 동생 미숙인데 열병으로 벙어리가 됐다고 신분 위장을 한다. 하지만 미즈코가 피난민 증명서가 없음을 알게 된 최주임은 그 일을 빌미 삼아 돈을 갈취하고 명숙에게 흑심까지 품는다. 한편 전재소의 사내들은 하루라도 빨리 귀향열차를 타기 위해 매일 러시아인 군수물자를 운반해주는 사역에 나간다.
평소 미즈코를 수상쩍게 여겨온 끝순은 미즈코와 명숙이 없는 사이 미즈코의 짐을 뒤져 이불 호청을 뜯고 기모노의 띠를 찾아낸다. 귀향 열차를 타야 될 때가 내일로 다가오자 끝순은 미즈코의 정체를 집요하게 캐묻고 순남도 이에 가세한다. 명숙이 결사적으로 미즈코를 함께 귀향 열차를 태우려 하자 마침내는 미즈코가 자면서 잠꼬대를 일본말로 한 것을 들었던 어린 숙이와 철이까지 끌어들여 미즈코의 신분을 폭로시킨다.
결국 명숙은 무릎을 꿇고 미즈코를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통사정 한다. 이 과정동안 가장 연로한 이 노인부터 이 집단의 정신적인 지주인 구원창까지 의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명숙에게 호감을 지녔던 영호가 명숙이만이라도 데려갈 뜻을 비치자 명숙은 다음 같은 말로 어설픈 동정심을 걷어차 버린다.

명숙 : 정말 얘기해 줘?
미즈코 :명숙, 그만해. 말하지 마!
명숙 : 위안소.

극의 마지막은 미즈코에게 임신 시킨 오카다의 고향 시코쿠의 어느 바닷가이다. 밝은 햇빛 아래 서있는 명숙과 미즈코의 모습으로 대미를 장식함으로써 배삼식은 조선일보 최보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촛불과 태극기가 첨예하게 맞섰던 최근의 사태를 보며 타인을 충분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멋대로 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또한 ”명숙과 미즈코에게 가장 큰 존엄과 고귀함을 부여하고자 했던 소망”을 당당하게 펼치며 인간은 어디까지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수작을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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