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진 땅과 바다를 가진 ‘느리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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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땅과 바다를 가진 ‘느리실마을’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0.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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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21> 서부면 상황리 상황마을
김찬 총무(왼쪽)와 이춘학 이장이 느리실마을 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부면은 홍성군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한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넓은 들판 끝에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진 수평선을 배경으로 한 풍경화를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곳이 상황마을이다.

상황리는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는 쪽이 속동마을, 내륙 쪽으로 다소 들어가 있는 곳을 상황마을, 이렇게 2개의 자연부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황마을은 ‘느리실마을’로도 불리는데, 골짜기가 넓고 길며 마을 앞으로 펼쳐져 있는 들이 기름져서 가을이면 벼가 누렇게 익어 골짜기가 온통 황금물결을 이룬다고 하여 ‘누르실’로 불리워졌고, 그것이 ‘느리실마을’로 변화됐다는 설이 있다.

■‘느리게’ 쉬어가는 휴양마을
느리실마을의 유래에 대해 또 다른 설이 있다. 원래 양반동네여서 사람들의 동작이 느리다고 하여 ‘느르실’로 불렸다는 것이다. 두 가지 설 모두 지금 상황마을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뜻으로도 적합해 마을사람들은 옛 마을 이름에 애착을 갖고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들판이 기름지고 사람들의 성품이 느릿느릿 여유있는 모습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느리실마을은 지금 도시인들에게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쉬어가는 힐링의 장소요, 풍성한 농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고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느리실마을은 마을의 동쪽과 남쪽은 해명산, 북쪽은 은봉산이 감싸 안고 있는 형세인 데다 서쪽으로는 모산티가 바다를 막아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마을로 소문나 한국전쟁 때는 피난골로 이름이 났다고 한다. 어머니의 자궁 같은 그 아늑한 품은 지금도 여전해 주말과 휴가철 안식을 위해 찾는 도시인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농어촌공사가 기증한 마을회관
느리실마을은 우선 마을회관부터 특이했다. 각이 진 형태의 단층건물 3~4동이 기하학적인 구조로 맞붙어 있었는데 서구적이면서도 황토색 목재를 덧붙인 벽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상황리다목적복지회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노인회관과 새마을회관, 그 밖에 강의실과 숙소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부속건물이었다. 건물 머릿돌에는 한국농어촌공사가 2011년에 지어서 기증했다고 새겨져 있었다. 유독 이 마을만 국영기업으로부터 이런 엄청난 특혜를 받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이춘학(65) 상황마을 이장은 홍문표 국회의원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시절 지어줬다고 했다.

“홍성에 농어촌의 특징을 같이 가진 곳이 서부면밖에 없잖아요. 그 가운데 상황마을은 땅값이 가장 쌌기 때문에 다목적회관 건립 대상지로 선정됐어요. 당시 땅값이 바닷가 마을은 평당 최하 100만원 하는데 상황마을은 17만원밖에 하지 않았어요.”

이 이장은 상황마을이 바다를 바로 접하지 않고 다소 떨어져 싼 땅값 때문에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농어촌공사는 상황마을에 500평의 넓은 땅을 구입할 수 있었고, 동네 입구에 다목적회관을 멋지게 지어 기증했다. 상황마을에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훌륭한 시설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 이장은 이런 다목적회관이 전국에 4개밖에 없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다목적회관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귀농인을 위한 교육장과 숙소로 제공하기도 한다.

상황리 다목적복지회관.


상황마을의 자랑거리는 또 있다. 최근에 문을 연 상황오토캠핑장과 10년 전 지어 단체관광객을 위한 숙소로 활용하고 있는 느리실휴양마을이 그것이다. 바다와 가까운 어촌과 농촌마을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것이 상황마을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서 농어촌체험과 힐링을 위한 관광지로 상품화한 것이 주효했다.

상황오토캠핑장은 지난해 가을에 개장했는데 마을 뒤 넓은 들판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광활한 터에 41개의 텐트를 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캠핑장 입구에 사무동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사무실, 남녀샤워실, 남녀화장실, 세척장 3개가 있으며, 야외에는 주차장, 어린이 물놀이장, 족구장 등을 갖췄다. 이춘학 이장은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홍보 부족으로 뜸하다가 한 달 전부터 손님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며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요즘 토요일은 꽉 찹니다. 내일도 예약손님이 많습니다.”
기자가 상황오토캠핑장을 방문한 날이 지난달 22일 금요일 오후 이른 시간이었는데 벌써 주말을 보내려고 두 팀이 와서 텐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리와 운영은 부락에서 맡아 합니다. 아직은 흑자 안 나서 저 혼자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이장은 상황오토캠핑장이 개장한 후부터는 멀리 외출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집도 바로 캠핑장 앞에 있었다. 손님들의 호출에 언제든지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위치였다.

오토캠핑장 사용료는 성수기 1일 3만원, 비수기는 2만5000원이고 낮 12시 기준으로 체크타임을 적용한다.

상황오토캠핑장.

■어촌계 바지락 체험 운영
느리실휴양마을은 상황마을에서 바다로 가는 길목에 보게 되는 유난히 눈에 띄는 황토색 전통가옥 2채다. 2008년 바다음식 체험과 민박을 위해 홍성군농업기술센터에서 지어 상황마을에 기증했다. 지금 경찰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김찬(63) 씨가 총무를 맡아 두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속동갯벌에 가서 어촌계가 운영하는 바지락 채취체험도 할 수 있고, 고구마, 옥수수, 고추 등을 캐거나 따는 농촌체험도 할 수 있다.

“상황마을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같이 합니다. 상황마을은 58가구로 전체 주민은 111명입니다. 어촌계에 가입하면 바지락이나 굴을 채취할 수 있게 되죠. 어선도 4척이나 있습니다.”
이춘학 이장도 어촌계 회원인 데다 영농회장까지 맡고 있다. 상황마을로 귀농한 가구가 9호로 그중 3명이 어촌계도 가입했다. 바지락과 굴을 따는 일은 마을 공동작업으로 한다.


미/니/인/터/뷰
귀향 후‘머슴’ 생활하는 전직 경찰관

김찬 느리실휴양마을 총무

“느리실마을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느리실마을에 바다음식 체험관이 2008년에 지어졌고, 그 뒤 저녁노을관도 생겼습니다.”

전직 경찰관으로서 지금 느리실휴양마을의 운영을 맡은 김찬 총무가 이렇게 소개하면서 자신이 이 일에 관여하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2013년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느리실휴양마을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전화조차 받을 사람도 없었어요. 시골 분들 가운데 맡아 할 수 있는 분이 없었죠. 그래서 제가 아내와 같이 전적으로 매달려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이 집의 머슴이 됐습니다.”

김 총무는 마을 일을 대신 맡아 할 뿐이기 때문에 자신을 ‘머슴’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아내와 같이 관리와 운영을 맡은지 1년만인 2014년 드디어 흑자를 낼 수 있었다. 그 후부터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으나 올해부터 고전하고 있다고 했다.

“사무장 인건비를 정부가 지난 5년간 지원해 줬으나 올해부터 끊기면서 운영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부득이 사무장을 내보내고, 두 부부가 모든 일을 다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부인이 단체 민박손님들을 위한 식사준비로 분주하고 그는 건물관리부터 예약전화, 접수, 장보기 등 온갖 잔심부름으로 머슴보다 더한 마당쇠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그래도 주말에 한꺼번에 닥치는 손님들을 감당할 수 없어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물론 엄연히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지역에 고용창출 효과도 있습니다. 식사 준비를 위해 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느리실휴양마을의 수용규모는 바다음식체험관이 30명, 저녁노을관 20명으로 단체손님 유치가 가능하다. 더 많은 손님이 올 때는 상황마을 다목적회관도 숙소로 활용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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