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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8>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현미경을 통해서 관찰된 임신중 씨의 정액은 그러나 살아 있는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시야 가득히 죽음의 정적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마리 정자의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절망적인 상태였으나 한 박사는 솔직하게 이러한 사실을 환자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왜, 무엇 때문이냐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 그는 단지 환자들에게 불성실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의사로서 그 순간 타인이 이해하지 못할 고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임씨 부부와는 여러 차례 면담을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정도는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파악하게 되었다. 한 박사는 그러한 짐작에서인지 두 사람은 마치 남매나 되는 것처럼 얼굴이 서로 닮은 데가 많은 부부처럼 보였다.

부인인 신수경 씨도 둥근 얼굴에 안경을 끼고 남편의 습관을 닮아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한 박사는 이런 것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 부부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삽화·신명환 작가.

한 박사는 의자에 앉아 있는 임씨에게 당신 쪽에서 중대한 원인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부인 쪽의 테스트를 다방면으로 해 보지 않으면 확실한 것을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왜냐 하면 그들이 결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충격의 절망을 가능한 한 최소한도로 줄여주는 것도 의사로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한 박사는 만일 부인 쪽에 아무 이상이 없고 또 남편 쪽에도 치료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소위 AID란 방법도 의학적으로 있으므로 그 방법을 택해서라도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지의 여부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타진을 해본 것이다.

부인인 신수경 씨도 자기로서는 꼭 남편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원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라고 한박사는 생각했다. 남편인 임 씨는 그럴 때에도 온화한 표정만 짓고 좋다 싫다, 하는 확실한 의견은 말하지는 않았다.

그 후 반년 정도 지난 후에야 한 박사는 부인인 신수경 씨의 검사를 끝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배란도 정확하고 난관도 정상이었으며 수정란의 내막착상에 필요한 홀몬을 내는 황체기능에도 이상은 없었다. 배란 시기에 분비하는 경관점액도 충분했다.

자궁이나 질에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 극히 건강한 상태였다. 한 박사는 옳은 태도라고는 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불성실한 성격을 조금은 의식적으로 써 보기로 했다. 거의 절망적이라 생각되는 임신중 씨에 대해 치료를 해 보기로 시도한 것이다.

대개의 불임증 부부의 경우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는 다수 무리한 테스트를 받게 해도 자기는 자신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으나 임 씨만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성의껏 잘 따르고 있었다. 적어도 한 박사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한 박사의 출신교인 명문대학의 부속병원으로 보내 정밀 검사를 받게 한 결과 임씨는 일종의 성기의 발육 부진이란 결론이 나왔다.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고나도트로핀의 양이 부족한 것이었다. 고환조직 내에 정자가 발견되지 않게 되면 치료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한 박사는 임신중 씨에게 임마혈청성성선자극 홀몬 천 단위를 1주에 2개씩 주사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한 박사는 이 주사가 어떤 기적적인 효과를 나타내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이 주사는 20개가 1그루로 되어 있는데 2개월 반 동안의 치료 후면 대개 부부는 임신에 대한 일루의 꿈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 때의 결과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임 씨는 추석이 지난 후부터 시작했으므로 이제 7주 째였다.

“부인께서도 안녕하십니까?”
한 박사가 물었다.

“네, 추석 연휴에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아내는 얼마나 즐거웠었던지 절에라도 다시 가자고 하도 졸라서‥‥‥”
“그것도 대단히 좋지 않습니까? 즐겁게 서로 사랑하시며 지내는 게 좋으시지요.”
“그런데 집 사람은 부처님 앞에서 아이를 갖도록 해 달라고 불공기도를 드릴 속셈이었던 것 같습니다. ” <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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