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원주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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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원주민입니까?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1.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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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1만1000원

작가의 작업을 만나다보면 그 작가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말이다. 최규석 작가가 그렇다. 물론 한 번 전화 통화를 한 적은 있다. 만화 수업을 준비할 당시 강사 섭외를 위해 메일을 남겼는데 생각지도 않은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전화를 해준 것이 어딘가. 다른 작가들은 메일에 답도 없었다. 그게 누군지 꼬집어 말하지는 않으련다. 비교되니까 말이다.

최규석 작가는 1977년생으로 상명대학교 만화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화려하다는 표현이 상투적일지 모르지만 그 스토리에서만큼은 애잔하고 유머러스하고 삶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며 젊은이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던 작품이다. 이어 ‘습지생태보고서’, ‘울기엔 좀 애매한’, ‘100℃’ ‘송곳’ 등의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자칭타칭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로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200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사회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개인의 삶을 감동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내고 있다.

최규석 작가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갑자기, 그리고 너무 늦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마치 물 마른 강바닥에서 소용도 없는 아가미를 꿈벅대는 물고기처럼 마치 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했던 사람들, 그들을 키웠던 곳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들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들. 나는 그들을 ‘대한민국 원주민’이라 이름 붙였다…이 이야기가 무엇이든, 깔끔하게 닦인 넓은 해안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물질하러 가는 늙은 해녀들, 도시 곳곳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발견되는 텃밭들, 전통문화행사에서 공설운동장 인조잔디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를 꽂으며 모심기 시범을 하는 노인들, 논밭이었던 찜질방과 민가였던 오리백숙 집들, 간혹, 치어 죽은 개를 자전거 짐칸에 싣고 가며 입맛 다시는 노인을 한번쯤 되돌아보도록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은 없겠다.”

원주민이라 하면 흔히 그곳에 오래도록 토박이로 살았던 사람을 의미한다. 모든 것들이 옛것의 흔적을 허물고 새것만을 추구하는 요즘, 토박이는 있을지 몰라도 원주민은 어쩌면 없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총148개의 세션으로 나뉜다.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 누나와 형 이야기, 부모 이야기 등이 근대에서 현대사회로 이행하는 사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작가 어릴 적 이야기에서는 이 작가 ‘도대체 몇 살이야?’라는 궁금증이 생기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남의 집 창문 넘어 보다가 형한테 혼나던 일이나 운동화가 없어 고무신을 신고 다녀 놀림 받았던 기억 등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봄직한 추억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148세션 ‘원주민’이다.
「처음 집을 지었을 때 제법 정원 같은 꼴을 갖췄던 마당은 몇 년을 못가서 남새밭이 돼버렸다. 미끈한 화강석 갈아 만든 베란다는 고추 말리는데 쓰고, 시멘트 기둥에는 직접 거둔 콩으로 쑨 메주들이 달렸다. 동네 노인들은 뒷산 아래 국유지를 손바닥만큼도 놀리는 법이 없다. 옛날 얘기를 꺼내면 몸서리를 치면서도 손수 기른 작물들을 만질 때는 제일 밝은 웃음을 짓는다. 또 밭에 갑니꺼? 니도 함 가보자. 배차가 울매나 잘 됐는데. 아따 그 놈의 배추 닳겄다, 닳겄어. <알림> 당 지역은 고등학교 설립부지로 선정되었으니 일체의 경작행위를 금함을 알려드립니다. 서분해서 우짜꼬. 서분키는 뭐사, 비료값도 안 나오는 거 씨언하이 됐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아는 동네에도 조그만 땅뙈기 하나만 봐도 무언가를 심지 못해 안달이 난 노인들이 산다.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뽑아주고, 갈아주며, 애지중지한다. 그렇다고 혼자 먹는 것도 아니다. 여기저기 나눠주고 싸준다. 그러다 경작금지라는 푯말이 걸리면 아무 미련 없이 다른 땅뙈기를 매의 눈으로 찾아낸다. 그 노인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내게 원주민이란 자신들의 과거와 삶의 방식이 자연스러운 형태로는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을 뜻한다’는 작가의 말에서 왠지 모를 삶의 비애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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