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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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19>
  • 한지윤
  • 승인 2018.03.2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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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그 후부터 한 박사는 환자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주의하여, 상대가 어떠한 관계인지 이야기할 때까지는 지레 짐작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검사를 받으신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한 박사는 부인인 이서영에게 물었다.
“네, 벌써 15년 전인데요. 그 후에는 전혀 진찰을 받지 않았어요. 원인이 누구에게 있다고 탓하기 보다는 서로의 책임이랄까, 운명이랄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고 주인어른이 말씀하시기에 저도 그렇게 생각하며 줄곧 살아왔습니다.”
“그 때는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받았던가요?”

책임이니 운명이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한 박사는 이럴 때에는 아주 사무적인 문답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라서 잊어버렸지만 그 때 조직검사를 한다고 들은 것 같아요.”
“렌트겐은?”
“의사는 권했지만 그만 두었어요.”
흔히 있는 일이다, 라고 한 박사는 생각했다. 불임증의 여성쪽 검사는 생리적인 주기의 곡선을 관찰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2,3일에 금방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 진찰을 받아 보자고 제의하신 분은 어느 쪽이 먼저입니까?”
“제가 제의했어요.”
아내가 말했다.

“집사람에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가혹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가 없는 것은 공동책임의 운명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이상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기도 마지막 일지 모른다 싶어 사실은 초조해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마흔여섯 살이나 되어 이제 와서 새삼 무슨 자식이냐고 무리라고들 합니다만, 지금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영영 끝장이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남편이 심각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 초조해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한 박사는 남매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양우석 씨 부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날 한 박사는 가능한 검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혈침과 그 외의 다른 검사를 하기위해 채혈을 하고, 기초체온을 기록하기 위해, 필요한 그래프 표를 주었다. 생리주기를 물었더니 마침 배란기에 해당된다고 판단되어서 경관점액부터 검사하기로 했다. 자궁의 경관점액은 배란시기가 되면 일종의 독특한 현미경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점액은 마치 맹물처럼 담백하게 되고 색깔도 투명할 정도가 된다.

주사 통으로 이 점액을 조금 뽑아 유리판 위에서 건조시켜 현미경으로 보면, 마테오 신부가 말한 적이 있는 장엄한 드라마가 놀랄 정도로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극히 정상적으로 배란이 되고 있으면 현미경으로 보이는 점액에는 양치식물인 고사리 잎과 같은 형태라든가 또는 그 중심에 십자가 모양의 결정이 나타난다. 이것이 식염, 크로라이드제, 뮤코스 등의 성분이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플러스 3도입니다.”

간호사가 말했으므로  한 박사는 양우석 씨를 쳐다보면서,
“경관점액의 표본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이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 박사는 현미경을 잠시 들여다 본 후에 양씨 부부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아름다운 광경이군요.”
양씨는 현미경의 시야에 들어온 장관에 감탄하는 것 같았다.
양치상의 결정이라는 것은, 실로 장엄할 정도로 아주 멋진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불안해하고 욕정을 느끼고, 사랑하고, 입고, 먹고, 자고 하는 인간의 조직 일부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끝이 뾰족한 갈대 잎 같은 모양이 서로 겹쳐져 있다. 인간의 생이란, 결코 제멋대로 이거나 우연도 아닌, 어떤 위대한 힘으로 질서 정연하게 계획된 아래서 창조되고 지배되는 것이다. 라고 겁이 날 정도로 웅장한 현상이 현미경 속에 전개되고 있었다.

“현미경으로 이렇게 보이는 현상은 정상적인 상태인 것입니까?”
양씨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 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자들이 아름답다거나 못생겼다고 하는 얼굴이나 몸매들을 일률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에 속한다. 여자들이 여윌 정도로 날씬하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과는 달리 조금 통통한 몸매가 좋다고 하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다리가 늘씬하게 빠져야 좋다고 하는 남성도 있어 결국 취향은 가지각색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건전성이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강한 측면에서 본다면 외관보다는 경관점액의 결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한 것이 된다. 만일 양치상의 결정이 나타나지 않으면 배란이 되지 않는 것이고, 배란이 없다면 임신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여자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란은 현재 상태로는 대단히 좋은 편입니다.”
“그럼, 역시 내 책임인지 모르겠군‥‥‥”
남편인 양씨는 쑥스러운 듯이 힐끗 한 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번에는 선생님 쪽의 정액 검사를 해야 합니다.
한 박사는 어리둥절해 하는 양씨에게 정액검사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성관계를 4일이나 5일 동안 금한 후에 용수 법으로 해서 병에 받아 오도록 일렀다.
이 때 콘돔 같은 것을 사용하게 되면 검사 효과가 확실치 않아 피하도록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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