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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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24>
  • 한지윤
  • 승인 2018.05.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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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한 선생님이십니까? 프론트의 김진우 입니다.”
“어? 어‥‥‥”
한 박사는 안심했다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대진으로 와 있는 그 천세풍 박사가 어떤 실수라도 했나 싶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개인의 일인데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오시면 의논드리고 싶었던 것인데 오늘 야근이라서 나와 보니 선생님께서 와 계시기에 전화를 드리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낮 근무와 교대가 되니 아침 일찍 전화하기가 곤란해서 이 시간에 전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우는 한 박사와는 구면이다. 호텔맨답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단정한 용모인 삼십대 초반의 사람으로서 프론트에 있는 여러 사람 중에서도 선임자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진우는 한 박사에게 친절하고 많은 편리를 봐 주고 있었다.

“누군가 편찮은 분이라도 있으세요?”
“네. 그렇습니다.”
“전화로는 말하기 곤란할 것이고, 상관없으면 내 방으로 와요. 아직 자지 않고 있으니.”
김진우는 한 박사의 방에 와서는 마치 남의 집에 처음 방문한 사람처럼 긴장해서 몸 둘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잘 훈련된 호텔맨은 근무 중에 손님에게 자기의 개인 일을 부탁한다거나 방에 들어가 앉아서 이야기하는 법이 아니라는 것을 한 박사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상당히 중요한 일인 듯 싶었다. 어느 정도의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화로는 이야기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방으로 오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어려워 할 건 없어요. 마음 푹 놓아요. 나도 이렇게 잠옷 바람이고 여기는 더군다나 자네가 있는 호텔이잖소.”
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옆방과의 사이에 있는 문을 닫아 버렸다. 어머니와 딸아이가 보고 있는 TV가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여기에 와 있는 김진우의 긴장을 다소라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죄송합니다. 모처럼 쉬시러 오셨는데‥‥‥“
 “아니, 충분히 쉬고 있어요. 자, 한 잔 합시다. 호텔의 바는 비싸지는 않으나 나는 그렇게 마시는 것보다는 드러누워서 한 잔씩 하는 것이 좋아.”
한 박사는 김진우 앞에 술을 따랐다.
“몇 해 전부터 걱정을 하고 있는 일인데 제 형님 내외의 일로 선생님께 상의 드리고 싶어서‥‥‥ 염치없는 일입니다만.”
“형님은 몇 살이지요?”
“서른 다섯입니다.“
김진우의 생가는 영등포에 많이 있는 어묵제조공장을 하고 있었다. 부친은 사장이라지만 매일 직공들과 함께 일하고 있고 맏형은 한림공과대학에 재직 중이었다. 수재인 맏형이 어묵제조공장을 승계해서 맡을 수가 없게 되자 사람 좋은 둘째형이 할 수 없이 그 부친의 뒤를 잇게 되었다. 김진우는 셋째로 막내였다. 둘째 형에게 데릴사위의 자리가 나왔었다.

호텔 앞에서 불고기집을 하고 있는 음식점이었다. 지금은 스테이크 같은 것도 하고 있으므로 외국인 손님도 많으나 일부러 서울 등지에서 온양까지 불고기를 먹으러 오는 손님도 많았다.
식당주인의 외동딸인 민영이는 둘째 형인 영우보다 두 살이나 위였다. 중매한 사람의 말로는 그의 집안은 당시 수백억 원의 자산가였고 임야도 많았다고 했다.

외동딸인 민영이는 얌전하고 온순한 여자이나 신장이 나빠서 서른이 가까운 지금까지 혼기가 늦었다고 했다. 김진우는 그 형과 네 살의 나이 차이 때문에 그 당시의 경위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 부친은 돈을 보고는 데릴사위를 줄 수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형은 선을 보고난 후에 거절해도 늦지 않으니 맞선이나 보자고 해서 결국 그 혼담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렇다면 형수 되는 분은 신장이 나빴으나 지금은 좋아졌다든지 아니면 별로 대단하지 않았으므로 결혼했다고 하는 이야기였겠군요.”
한 박사는 김진우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신장이란 것은 대수롭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언제부터 나빠졌다고 하던가요?”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졸업은 못한 것 같습니다. 머리가 결코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만나보고서 알았습니다. 가정교사를 들여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지식도 있고 또 퍽 차분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이 좀 이상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가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식당주인은 지금처럼 지배인을 두고 영업을 하고 집안일은 형수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형은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옛날과 같이 부친의 어묵제조공장인 영등포까지 통근을 한다는, 처음부터의 약속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퍽 좋은 일인데. 병이라도 있으면 형님이 확실하게 말하지 않겠어요?”
한 박사도 L호텔 앞에 있는 식당 앞을 몇 번이고 지난 일은 있었지만 불고기를 먹으러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저는 말재주도 없고 또 표현력도 없습니다. 어떻게 말씀 올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형의 표정으로 보아 무언지 모르게 어두운 면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뭔가 있기는 한데,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한 박사는 그렇다면 이 쪽에서도 무언지 모르지 않나 싶어 잠자코 있었다.
“형도 처음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조금씩‥‥‥”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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