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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27>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딸을 데리고 아래쪽인 프런트로 걸어갔다. 김진우가 유리를 데리고 아이스 스케이트에 가게 되어 있으나 먼저 형님을 소개해야 된다고 했다. 김진우의 형님은 미남형의 동생과는 달리 머리가 약간 벗겨진, 얼굴이 좀 검은 남자였다. 얼굴빛이 검다는 것과 표정이 어둡다는 것은 관계가 없는 수가 많으나 이 남자의 경우는 둘 다 그 요소를 겸하고 있는 듯했다.

“저의 집은 이 호텔 앞에 있어서 차를 댈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지는데, 상관없겠습니까?”
“이 앞인데, 그냥 걸어가죠.”
“다행히 비도 그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돌아가실 예정이십니까?”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일해야 되니까요. 대진으로 온 의사에게도 밤 아홉 시까지는 돌아온다고 말하고 왔지요.”
“너무 늦지 않게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스팔트가 젖어서 길이 미끄러울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불고기집은 큰 거리의 도로변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도로변에는 오래된 대문에 간판만 나와 있었다. 양편으로 대나무가 심어져있는, 잘고 예쁜 돌멩이를 깨끗하게 깐 길을 걸어서 안으로 들어간 곳에 현관이 있었다. 건물은 밖에서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주차장은 문 옆의 가게를 새로 사 넓혀서 그런지 자가용 열 대쯤은 충분히 주차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현관까지 가기 전에 살림집으로 통하는 듯한 조그마한 별도의 길이 나 있었다. 길 양쪽에 심은 손질이 잘된 정원수 위에도 단풍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올라오십시오.”
살림집도 아담하게 지은 건물이었다. 안에 들어가니 복도의 끝에서 끝까지 푹신한 융단이 깔려져 있었고 난방도 잘 되어 훈훈했다. 한 박사는 촉감이 부드러운 융단 위를 걸어서 안쪽에 있는 거실로 안내되었다. 한 평이 넘어 보이는 통유리 창문 저쪽에도 붉게 물든 단풍이 눈앞에 보여서 한결 평화스럽고 온화해 보였다. 문 앞에 앉아있던 주인인 김영우가 한박사에게 정중한 인사를 했다.

“집사람이 오래 전부터 병이라서‥‥‥”
한 박사는 의사답지 않은 공상을 하고 있었다. 여기 인사를 하고 있는 김영우도 머리가 벗겨진 탓인지 나이보다는 더 젊게 볼 수가 없는데, 그보다 두 살이나 위인 아내라고 한다면‥‥‥ 전부터 오랫동안 병으로 앓고 있다면 아마도 나이 보다는 훨씬 늙어 보일 것이므로 ‘어머니쯤 될 아내’로 보일 부부일 것이라고 공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들어온 여자를 보았을 때 한 박사는 예상을 뒤덮은 예외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양장이 아닌 캐주얼이 돼서 더욱 복스럽게 보였다.

“일부러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라고 한 말소리도 소녀같이 맑았다. 목소리 뿐만이 아니다. 걸음 걸이나, 방석위에 앉아 있는 자세도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있어 보였다.
“여보, 모처럼 선생님을 여기까지 모셨으니 죄다 말씀 드려서 의논을 드려봐요.“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라도 타이르듯 말했다. 한 박사는 상대가 조금 부끄러워 하거나 아니면 당황해 하겠지 생각했었다. 적어도 한 박사 자신이 이런 곳에서 환자를 진찰한다는 것이 다소 쑥스럽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상대도 그 정도의 정황을 느끼리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어떻게 나쁘신가요?” 한 박사는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 실제로 진찰해 주셨으면 싶어서 옆방에 그 준비를 해 두고 있습니다만‥‥‥”
남편이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내는 마치 만들어 놓은 마네킹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어디로 갔지?”
하고 그가 말했다.
“할머니, 선생님이 진찰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지요.”
김영우는 방의 한 쪽에 앉아 있는 옛날 풍의 앞치마를 두른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칠십이 훨씬 넘은 노인이었다.

“그럼, 아씨.” 하고는 할머니는 부인을 부축해서 옆방으로 나갔다.
“부인께서는 아무 곳에도 외출 같은 것은 하지 못하십니까?” 그 뒷모습을 보면서 한 박사는 남편인 김영우에게 물었다.
“네. 결혼 후에는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그랬었다고 하니 근 20년가량은 바깥출입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분의 결혼식은?”
“여기서 했습니다. 피로연도 모두 이 집에서 했습니다.”
“신혼여행은 안 가셨나요?”
“네. 못 갔습니다.”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하시지 않으십니까?“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기저귀 생활이니 밖에 나가면 그만큼 부자유스러운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집에 있으면 기저귀도 할 수 있고 이 집도 온천물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하루 세 번 정도 목욕을 합니다. TV가 있으니까. 세상일은 집에서도 알 수가 있고, 옷 같은 것은 인터넷 등으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초진은 내게 없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한 박사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부인께서는 가게 일은 관여하시지 않습니까?”<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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