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28>
상태바
운명은 순간인거야 <28>
  • 한지윤
  • 승인 2018.05.30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아니죠, 하고 있습니다. 보기에는 저렇게 보이나 영리한 점이 많습니다. 꽃꽂이도 하고, 센스도 많아 꽃꽂이 그릇 같은 것도 미술전집을 뒤져서 구하고 있습니다. 경리 같은 것은 저보다 더 밝습니다. 저야 어묵 만드는 것 밖에 모르지만, 집사람은 회계사 못지않게 장부도 잘하고 있습니다. 세무서에서도 칭찬을 하지요.”
“부러운데요. 제 병원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두고 있습니다. 대개는 부인이 의료보험의 계산 같은 것은 하고 있지만 나도 하지 않고 집사람도 하지 않고 있지요.”

옆방에서는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 준비가 됐어요?”
어째서 이 남편은 아내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고 할머니만 부르고 있는지 한 박사는 알 수가 없었다.
“저 할머니란 분은?”
한 박사가 물었다.
“집사람이 어릴 때부터 저 분은 전쟁미망인이 되신 그 때 이후로 줄곧 저희 집에서 집사람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준비가 다 됐습니다.”

옆방 문이 열렸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이었다. 말끔히 세탁한 하얀 시트를 깐 요위에 얇은 이불을 덥고 민영이는 누워 있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민영이는 누운 채로 인사를 했다. 감정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듯한 냉랭한 음성이었다. 부끄러움도 없고 특별히 고맙다는 감사와 어떤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들로부터 배운 대사 그대로를 외우고 있는 듯했다.

한 박사는 어린이와 민영이가 마치 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이 두 쪽 다 사회라는 것이 없거나 아니면 있어도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여기에 조금 출혈이 있어서.”
남편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그 전부터 자주 있었습니까?”

할머니가 잠옷의 끈을 풀 때도 민영이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눈도 감지 않았다. 잘 세탁된 잠옷을 펼치자 오랫동안 누워 있는 노인들이 쓰는 어른용의 기저귀 커버가 나왔다. 할머니가 익숙한 듯한 손놀림으로 펼쳐 나갔다. 그 속에 들어있는 방금 세탁한 듯한 기저귀가 벗겨지자 한 박사는 지금 자기가 진찰할 부위가 부인과적인 부분과는 다른 곳임을 금방 알았다.

한 박사의 눈에 들어온 부위는 나이 보다는 젊은, 탄력 있는 아랫배 부분이었으나 거기에는 이상하게도 배꼽이 보이지 않았다. 배꼽 아래의 중심선을 따라서 조금 들어간 복부의 하단에 종루와 같이 조금 융기한 부분이 있었다. 좌우 6센티, 상하 5센티 정도의 붉은 색을 띄고 그 일부분이 으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 부위에서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그 부분을 연고 같은 것을 발라서 가아제를 대고 특별히 보호라도 하고 있는 듯했다.

한 박사는 그 부위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민영이에게 두 다리를 벌리게 하고 허리를 조금 들게 한 뒤 일반적으로 하는 부인과의 진찰 자세로 취하게 했다. 한 박사는 환부의 바깥 부분만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세밀하게 볼 생각도 없었으나 일단은 진찰의 목적을 다한 셈이 된다. 핏기 배인 붉은 종루같은 것은 선천성방광외반증이라고 해서 일종의 기형이다.

한 박사는 의과대학에 있을 때 방광의 성형수술을 한 뒤의 것은 한 번 본 적은 있었으나, 이처럼 그대로 방광이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채로 방치해 둔 환자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사로 있을 수 있는 기형이 아니었다. 하복부의 피부와 전실이 결손된 상태로 된 방광이 복벽의 보호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박사는 계속 환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팽륭한 방광의 하방 2개소에 뇨관구가 좌우 대칭으로 보이고 그 아래에 질구가 열려져 있었다. 합장한 손바닥의 손가락의 끝부분처럼 배치되어 있는 음핵귀두가 두 쪽으로 되어 있고 뇨도는 결손이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었습니까?”
한 박사는 남편에게 물었다.
“아내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셔서 지금 물어 볼 수가 없습니다만,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의사에게 보인 적이 있고 그 후 일곱, 여덟 살 때 한 번 서울의 대학병원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으나 거기서 뭐랄까요‥‥‥ 구경거리 같은 취급을 당한 것 같아 본인도 싫어하고 또 겁을 내서 그 후부터는 양친도 의사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방광의 외반증이라고 듣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병명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선천적인 기형이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한 듯합니다.”
누워있는 민영이는 눈을 뜨고 천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나 남편의 이야기를 남의 일처럼 흘리고 있는 듯했다.
“이건 대단히 특수한 케이스입니다. 나도 집에 가서 책을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유럽의 예로서는 3만인지 5만 명에 한 사람쯤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많다는 겁니까?”
“그 반대가 아닐까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치료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