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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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31>
  • 한지윤
  • 승인 2018.06.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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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하태명이라는 의사는 한 박사보다 상당한 연배의 산부인과 의사다. 이 근방에서 꽤 인기가 있는 의사. 사교성 좋고 친절한 대신 사람에 따라서는 거만하게 대하기도 한다. 철저한 권위주의자로서 장관이나, 도지사, 국회의원의 소개가 있는 환자라면 극진하기 이를데 없이 대해 준다. 일부러 현관까지 전송을 나가 차에 타는 것까지 공손하게 도와준다고 하는 소문이었다. 하산부인과 병원에 가면 대기실에서 복도까지 하 원장의 사진이 쭉 걸려 있다고 한다.

장관과 소파에 앉아 서로 담소하고 있는 사진, 여배우와 요트를 타고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 바둑의 명인과 호텔에서 대국하고 있는 모습, 이름이 있다는 무용수와 어울려서 우쭐거리고 있는 장면들을 찍은 이런저런 잡다한 사진들이 걸려있는 것이다.

“선생님, 하 선생의 병원에는 인도에서까지 암을 고쳐 주어서 고맙다는 감사장이 왔다고 해요. 그 감사장도 액자에 넣어서 걸어두고 있어요. 인도의 글씨란 참 묘하던데요.”
하고 일러 준 사람도 있었다.
“감사장인지, 검사장인지 모르지만 인도에서 예우가 나쁘다고 하는 항의 편지일지도 모르지.”
라고 한 박사는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 선생님이 암이라고 확실히 말해요?”
한 박사는 앞에 앉은 환자에게 물었다.
“저······ 1개월 정도 상태를 보고 더 악화되었을 경우 수술을 하자고······”
그것은 한 박사의 물음에 적합한 답은 아니었으나 그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어디 검사해 봅시다.”

한 박사는 준비를 끝낸 환자를 진찰하기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작한 대로였다. 자궁질부에 핏빛을 띤 미란이 확실히 눈에 띄었다. 물론 병 부위의 조직을 떼어내서 정식으로 검사하지 않으면 알 수는 없으나, 아마 훌리큘러에료죤이라 불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흔히 있는 병이다. 아이를 낳은 일이 있는 경산부에게는 두 사람에 한 사람 꼴로 이런 미란현상이 있다고 한다. 의학용어로 표시한다면 편평원주상피접합부가 외자궁구를 넘어 바깥쪽으로 이동하여 외자궁구 중심에 자궁질부가 원주상피에 덮혀 비로오도상의 적색면을 띠는 상태라고 하는 것이다. 이 증상은 에스도로겐이라는 난포홀몬의 양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는 태반에 에스도로겐을 받은 신생아에게도 있고, 임산부에게는 특히 많다고 한다. 그와는 반대로 폐경기 이후의 환자에게는 드물다. 한 박사는 미란의 일부분을 절제겸자로 조금 떼어내서 생리식염수에 이리저리 띄우면서 말했다.
“네, 좋습니다. 끝났어요.”

자궁질부는 놀랍게도 아프다는 감각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끝이 뾰족간 쌍구겸자로 걸어 당기거나, 조직의 일부를 뜯어내거나 해도 환자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신의 섭리인지 조물주의 섭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신체를 설계한 절대자의 용의주도한 배려임에 틀림없다. 만일 이 부위에 감각을 주었다면 출산 같은 일은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김경자 아주머니.”
한 박사는 데스크에 돌아와서 환자를 불렀다.
“지금부터 검사를 해 봅니다만, 확실한 것은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암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조금은 안심했다는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간단한 검사는 1주일이면 알 수 있고, 그 후 한 3일 정도면 또 다른 검사결과를 알 수 있지요.”
“그럼, 10일 후에 오면 확실한 결과를 알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 손님을 보내고 나서 한 박사는 기분이 언짢았다. 동업자를 악의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하태명 의사의 불의한 방법을 엿본 것 같아서 몹시 역겨운 기분이 든 것이다. 자궁경암은 자궁질부미란과 같은 부위에 발생하는 수는 많으나 암이 발생해서 진행하기까지는 미란과는 달리 세포의 이상증식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경암은 자궁경부 원주상피의 예비세포가 편평상피 기저세포의 이상증식이 그 원인이 된다고 한다. 이런 변화를 이형성이라고 하고 있다.

이형성에도 여러 층의 정도가 있다. 이상증식이 상피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경도이형성, 절반에 달하는 정도라면 고도이형성이라고 한다. 대개 눈짐작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구별이 확실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것이 소위 전암성병변으로 보이기 때문에 하태명 의사와 같은 의사가 이것을 환자에게 악 이용할 틈이 있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암으로 진행된다고 하면 이형성은 상피내암으로 되고 그 후 침윤암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만약 의사가 ‘의심이 가므로 수술을 합시다’라고 진단해도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할 수가 없다.

상피내암이란 것은 자궁경부, 경관상피, 경관선상피 등이 ‘암과 구별하기 어려운 이형성의 강한 상피로 변화하여 그 확산이 상피내에 머물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으나, 상피내암이 침윤암으로 되기까지는 적어도 수년에서 10년 정도의 세월이 경과해야 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그 동안은 계속해서 이러한 경고가 통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상피 변화 중에는 침윤암으로 되지 않고, 그대로 없어지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두어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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