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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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43>
  • 한지윤
  • 승인 2018.09.1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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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부인인 신수경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여고생들이 ‘아이 좋아!’ 하면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당연하잖아요. 그렇게 자신이 없었습니까?”
“오늘은 아버님 산소에 성묘라도 해서 이 즐거운 희소식을 알려드려야 겠습니다. 이봐요. 수경 씨! 아니, 나의 사랑하는 님이여! 팥밥이라도 해서 선생님께 갖다 드려야지.”
“네. 물론이예요!”
“팥밥은 저도 좋아합니다만, 너무 좋아 하시다가 혹시 잘못 되는 일이라도 있으면 모처럼 임신한 기쁨이 허사가 되고 맙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한 박사는 기뻐서 날뛰는 부부를 견제하는 뜻에서 주의를 주었다.
“네. 무리하지는 않겠어요.”

“기쁜 소식에 취해서만 있다면 안 돼죠. 또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먼저 부인의 혈액검사를 한 번 더 하고……그리고 이건 내 의학연구상 자료로 쓰고 싶은데 주인 되시는 분의 검사를 한 번 더 하고 싶습니다. 얼마만큼의 주사로 회복되었는가도 알고 싶고…… 참고가 될 것 같아서. 대단히 수고스럽겠지만……”
“아, 아닙니다. 선생님이 필요하시다면 무엇이라도.”
나이분 간호사가 정액채취용 그릇을 건네 줄 때까지도 임신중 씨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내일이라도 곧 받아 오죠.”
사흘이 지난날 아침 임신중 씨는 자기의 검사용 정액을 보내왔다. 임신중 씨는 그것을 접수창고에 건네고는 급히 돌아갔다고 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백화점이 휴일이 아닌 이상, 출근 전에 일부러 여기까지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럼, 한 번 볼까? 얼마쯤 정자의 무리가 증가했나를.”
환자가 뜸한 사이, 한 박사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어, 정말 좋은 봄이 왔나 보군! 난 아침에 졸려서 눈이 안 떠진단 말야, 자네들도 그렇게 졸립나?”
한 박사는 기지개를 켜면서 앞에 있는 젊은 두 간호사인 이영숙과 이나미에게 물었다.
“정말 졸려요. 1년 내내 잠이 오는걸요.”
힘이 세다는 이나미 간호사가 탄력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1년 내내다…… 그래……”
두 젊은 간호사 아가씨들은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면서 킥킥대고 터질듯한 웃음을 손으로 막으며 웃었다.
그 때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이분 간호사가 고개를 들고 한 박사를 불렀다.
“선생님, 잠깐. 임신중 씨 것인데요.”
“어디, 어디 보자구.”

자리에서 선뜻 일어나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가 한 박사는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당연한 것이라면 한박 사의 시야에서는 몇 마리의 정자가 헤엄치고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마치 은빛의 양떼가 이리저리 우글거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비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에 제공되는 젊은 의학부의 학생의 것을 갓 채취한 정액은 그랬다. 쓸 만한 정자가 몇 마리쯤은 있어야 한다.
한 박사는 현미경에 눈을 붙였다.
“나이분 간호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것 뭐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한 박사는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현미경을 조정했다.
“틀림없이 넣었어요.”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그래요.”
“틀림없이 임신중 씨가 가지고 온 정액인가?”
“틀림없는데요.”

나이분 간호사는 쓰고 남은 정액을 담은 그릇과 그것을 넣어 온듯한 봉투에 쓰인 꼼꼼하고 또박또박한 임신중 씨의 글씨를 한 박사에게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건.”
한 박사는 중얼거리면서
“이것 참!”
하고 탄성을 덧붙였다. 그 순간 혹시 나이분 간호가가 임신 반응의 측정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었다.
“검사결과 정말 플러스였나?”
“네. 틀림없는데요.”
나이분은 말수가 적은 편으로서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는 여자다. 대답은 부드러웠으나 자신이 있다는 말투였다.
임신중 씨 부인의 이상한 임신을 생각하자 한 박사는 불안한 기분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신중 씨 부인에게 확실한 것을 물어봐야겠다고 한 박사는 생각했다. 우울하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보다 앞서 다시 한 번 확실한 임신반응의 검사를 해본 뒤에 이점에 손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회가 의회로 빨리 왔다.
2월 중순쯤에 임신중 씨 부인이 벙글벙글 웃으면서 찾아왔다.
“어떻게, 불편하신 데라도……?”
“아무것도 아닌데요. 어제부터 배가 조금 아파서요. 걱정이 돼요…… 주인은 신경과민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선생님께 가 보라고해서……”
“출혈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한 번 더 소변부터 검사해 볼까요?”
한 박사는 나이분 간호사에게,
“임신중 씨 부인의 소변 부탁해요.”
하고 일렀다. 나이분 간호사는 검뇨실에 들어갔다가 5분도 못돼서,
“선생님, 틀림없이 플러스예요.”
하면서 백탁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유리판을 한 박사에게 갖다 보였다.
“응, 그렇군. 그래, 틀림없는데.”
“15초였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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