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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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8.09.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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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은 필자를 만났을 때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A양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하지만 첫 느낌은 중성적 이미지다. 잦은 결석과 조퇴를 하고, 스마트폰으로 SNS를 과도하게 하며, 친구관계에서 거절을 잘 못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요구를 잘 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의욕이 없고, 무기력한 상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하기 원하며, 집을 떠나서 혼자 지내고 싶어 한다.

A양은 출생하자마자 이모 집에서 만 4세까지 생활하다가 만 5세 경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다.
부모님의 사업으로 잦은 이사를 하던 중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 이혼으로 엄마와 언니, 오빠랑 함께 살았다. 하지만 A양은 자발적으로 5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아버지와 같이 생활했지만 혼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A양을 정서적으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양은 지금까지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는 아버지가 가끔 멋있게 보일 때도 있다.

A양이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이다.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고, 얼굴에 감정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A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와 오빠랑 자동차 안에 같이 있을 때, 무엇인가를 얘기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때 다짐한 것이 “앞으로, 절대로,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언니와 오빠는 부모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만 자신은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혹 얘기를 했을지라도 한 번 거절하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발달과정 중 최초로 경험하는 불안은 어머니로부터 격리되었을 때 느끼는 불안이다. 이 불안은 정상적인 정서다. 하지만 분리불안 장애는 집이나 부모, 또는 애착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과도하게 느끼는 불안으로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A양은 부모의 잦은 다툼과 폭력, 그리고 부모와의 분리 경험을 통해 ‘사람은 모두 떠날 것이다’, ‘엄마는 사탄도 이길 수 없다’라는 인지적 신념을 갖고 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부모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어떤 기대나 요구도 하지 않는 것이다.

A양이 상담실에 찾아 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있음을 암시한다. 아버지에게 갖고 있는 희망을 상담자에게 찾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던 아이가 상담실에서 변화하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담자는 그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네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러자 A양은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잘 살아볼 수 있겠다”고 했다. 엄마, 아빠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욕구를 조금이라도 말하고 견딜 수 있을 때 새로운 관계로 진입하는 문지방을 넘어 섰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기대고픈 사람들이 있다. 필자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기대감을 표현했을 때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 그만의 상황과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A양은 SNS를 통해 끝없는 관계를 기대하고 갈망하고 있다.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지만 SNS를 통해 표피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SNS를 하는 것은 대상을 찾으려는 간절한 노력이다. A양의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기대는 A양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A양이 그 시절의 아픔을 상담실에서 이야기함으로써 거절에 대한 두려움의 가장 큰 고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 거절당했던 두려움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지만,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A양이 갖게 되기를 필자는 마음을 모아 응원한다.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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