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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만 해결되면 살지 않을까?궁금한 당신
홍동면 금평리 한유진
정자나무 밑에 마련한 평상에서 드론을 조정하고 있는 한유진 씨.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았다.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에서 더 오래 살았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귀여운 꼬마들이 엄마와 함께 탔다. 똘망하고 귀여운 녀석들이라 순간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와이프가 허리를 꾹 찌르며 눈을 찔끔거렸다. 내밀었던 손이 움찔하며 힘없이 내려갔다.

도시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인사를 나누는 일이 좀체 없고, 혹여 알더라도 귀엽다며 얼굴이나 머리를 만지는 일은 예의가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기가 팍 죽어 힘없이 자가용에 올랐다. 양화대교도 못 가 도로는 꽉 막힌 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답답했다. 언제까지 이런 답답한 도시에서 살아야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시골에서 산다고 뾰족한 답이 나올까? 의문만 가지면 해결되는 것은 없다.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지난 2014년 8월에 홍동면 금평리에 자리를 잡은 한유진(55)씨는 40대 후반부터 귀농을 생각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첫 방문지는 전남 영광이었다. 서울에서 관광버스가 와서 본인 비용이 전혀 들지 않은 채 몸만 가면 되는 적극적인 지자체 귀농·귀촌 지원책이었다. 괜찮았다. 자신감을 얻어 두 번째 방문한 곳은 진안이었다. 귀농인의 집에서 한 달여를 살았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결국 예산에 사는 누님을 통해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 홍성을 알게 됐다. 문당리 귀농학교에 참여하며 서서히 지역에 물들어갔다. “의식주와 에너지 문제만 해결되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의식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생계비는 들어간다. 아직 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한 씨는 농사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적절한 노동력으로 밭을 가꾸는 일은 좋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과도한 노동력이 들어가고 또 그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분통 터트리는 상황들을 보면서 농사에 자신감이 생기지를 않는다. 또 정부 정책들이 대부분 대농들을 많이 지원하지 소농은 잘 지원해주지 않는다. 그런 말이 있다. 마트가 내 텃밭이라는 말. 차라리 마트를 이용하는 것이 농부에게나 나에게 더 유익한 것이 현실이다.” 한 씨는 농사에 활용분야가 많을 것으로 판단해 2년 전 드론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정작 군에서는 드론과 관련한 다양한 지원 사업이 없었다.

“인근 청양이나 괴산 등에서는 드론과 관련한 군의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다양하게 진행되는데 홍성은 아직 없어 아쉽다. 지금은 부여에 있는 드론교육원에서 드론 교관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드론 이외에도 목공 작업도 틈틈이 한다. 갓골목공반에서 두 달여를 배우며 직접 집 옆에 목공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실도 마련했다. 집 앞에 있는 정자나무 밑에 평상도 제작하고 제초매트를 깔아 가족들이 오거나 마을 주민들이 오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목공은 최소한의 생존비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시골에서 막상 살아보니 초반에 보이던 것들 이외의 것들이 눈에 보이고 시각이 변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환경이 바뀌면 조금씩 변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서울에서만 살던 사람이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의 과정은 어렵고 힘든것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다. 시골에 살게 되면 일단 옷이 많이 필요없다. 대신 일복이 필요하다. 먹을거리는 주변이 천지고 이웃에서도 해결된다. 집도 허름한 농가주택 얻어 고쳐서 살면 된다. 그 외에 또 다른 것이 필요할까 싶다. 그런데 말이다. 왜 우리는 귀농하면 부농을 떠올리며 성공한 삶을 이야기하는 걸까?

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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