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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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0>
  • 한지윤
  • 승인 2018.11.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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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한 박사의 말에 어떤 중대한 불안을 느껴서인지 민자는 돌아갈 때까지 두 번이나 ‘대학병원에서 뭐라고 해도 또 선생님 병원에 와도 됩니까?“라고 되묻곤 하기에 한 박사는 ’좋아요, 좋고 말고, 언제든지‘라고 했으나 솔직한 심정은 그만 와 주었으면 싶었다.
그날 저녁 무렵 아내인 윤미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파출부 아주머니가,
“사모님은 감기 기운이 있다고 2층에 누워 계십니다.”
하고 말하기에 한 박사는 아내를 보기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감기라고?”
한 박사는 인사치레로 말했다.
윤미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그동안 울고 있었는지 눈이 부어 있었다. 방 안의 어둠을 핑계로 한 박사는 못 본 척 했다.

“아마 어제 비를 맞은 게로구먼, 그건 나빠.”
‘어딜 쓸데없이 돌아다녀’ 라고 한 박사는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당신, 서울에는 점괘 방향이 좋아서 간 것인데.”
하고 말하고 한 박사는 그만 앗차!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 달 말의 연휴 직전에 박연옥 여사가 곧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간다고 인사차 한 박사를 찾아왔다. 한 박사는 그녀의 표면상의 용무 외에도 자기에 대한 인상의 뜻도 있다고 느꼈다. 선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하면서 양주 1병을 가지고 왔다.
“이것 고급인데!”
한 박사는 좋아 했으나 솔직하게 말하면 술맛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나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점은 대진으로 오는 천세풍 박사도 술이라면 막걸리든 양주든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전 레드 라벨만 먹죠.”
라고 하기에 이 젊은 사람이 건방지게 스카치만 마시는구나 했더니 그도 역시 국산 애용자였다.
“양우석 씨의 일 걱정을 끼쳐 미안해.”
박 여사의 이 말에 이것이 주된 목적이구나 하고 한 박사는 생각했다.
“아뇨.”

한 박사는 그저 지나가듯 대답했다.
양우석의 난관조영의 촬영은 이 달에 와서야 예정대로 촬영했으나 그 결과는 좋지가 않았다. 한 박사는 수성의 조영제를 넣고 2장의 사진을 찍었다. 처음 한 장은 자궁의 그림자만으로 난관은 볼 수가 없었고, 2~3분 후에 찍은 2장 째의 필름도 역시 같았다. 이 필림은 양쪽 난관의 자궁구의 폐홰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이 없겠는데요.”
한 박사는 확실하게 말했다. 사형선고라도 받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서영 씨는  겨우 미소를 띄우면서,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으로써 단념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이 조금 비틀거리는 듯싶었다.
“이서영 씨, 그래도 좋아하고 있었어요. 이것으로써 심리적인 정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검사받은 것만 손해 본 거라고 난 생각되는데.”
“어머, 의사가 그런 생각을 다 하다니. 그렇게도 살아가는 게 인생사는 것이야?”
“브라질에는 무슨 일로? 카니발?”
“아니, 카니발은 지금 시기가 아니잖아. 로우리 씨가 오라고 하고, 또 보고 싶은 옛 친구도 있고 해서.”
“좋은데. 난 미국 정도라도 가보고 싶은데.”
“왜 안가지?”
“환자는 1년 내내있죠. 그보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두 가는 판이니 내 한 사람쯤 안가도 무방할 것 같아서.”
“또, 또……”

이서영 씨는 눈에 웃음을 가득 담고 한박사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박 여사는 얼굴 표정을 고치면서,
“한 박사, 난 여행을 가면 한 구석으로 허무하게 느낄 때가 많아요. 그래도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사람이 곰팡이가 필 것 같고 해서……”
“멋진 놈이라도 하나 낚아 와요. 이 지구상에는 혼자 사는 홀애비도 많은데. 남자와 둘이서 사는 것도 좋은 것 아니예요?”
“이치는 그렇지만.”
하고 박 여사는 솔직하게 시인하는 듯했다.
한 박사는 부천에서 내과병원을 하는 이병철이라는 아는 의사의 소개장을 가지고 온 부부를 진찰실에서 맞이했다.
“네…… 아, 그렇겠군요.”
하고 한 박사는 소개편지를 읽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단히 죄송스런 부탁입니다만, 전 재혼한 처지고 집사람은 초혼입니다. 전 벌써 마흔 셋이나 되었습니다만, 집사람은 스물아홉입니다. 이대로 아이를 갖지 않게 한다는 것도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 선생님 병원에서는 인공수정도 하신다고 해.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듣고 있기에……”

신명현이라고 찾아온 사람은 몸은 말랐으나 키가 큰 사람이었다. 소개장에 의하면 신명현은 죽은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둘 있었다. 5년 전, 이 이상의 아이는 더 필요 없다고 해서 정관의결찰수술(정관을 실로 동여매어 정자가 통하지 않게 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 뒤 아내가 죽고 2년 전에 지금의 부인과 재혼을 했다. 젊은 아내가 아기를 꼭 갖고 싶어 해서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비뇨기과의 검사도 받았으나 정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아이가 잉태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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