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난 살고 싶어!”
상태바
“빌어먹을, 난 살고 싶어!”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9.01.12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와일드 2015.01.22 개봉 | 119분 | 장 마크 발레 감독 | 리즈 위더스푼 주연

길 위에 나선 적이 있다. 30대 젊은 나이도 아니고 40대 중반에 겁도 없이 배낭 하나 메고 길 위를 헤매고 다녔다. 이유는 단순했다. 길이 좋아서였다. 길게 이어진 직선의 도로가 아닌 굽이진 곡선으로 이어진 능선들을 따라 걷다보면 우리네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숱하게 하고는 했다. 그 길의 여정에 같이 한 사람은 없었지만 나무와 새, 돌멩이 하나하나가 그 순간에 함께 했다.

어느 날은 동쪽 20번 국도를 따라 걸을 때였다. 민박집에서 나와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배낭을 둘러맨 채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이 나오고 이내 숨이 차오르며 멈추고 싶던 그 순간, 어디선가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나면서 하늘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좀 더 걸으니 눈  앞에 파란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에 도착해 물집이 생긴 발가락을 바닷물에 담그니 눈물이 났다. 왜 인지는 모른다. 그저 눈물이 났고 말없이 손등으로 그 눈물을 훔쳤다. ‘길을 따라 걷는 일은 곧 나를 만나는 길이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기도 하다’는 그 평범한 진리가 나를 길 위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와일드’는 셰릴 스트레이드의 동명 원작을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영화화했다. 셰릴 역을 맡은 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PCT(the Pacific Crest Trail·태평양을 따라 멕시코 국경~캐나다 국경까지 커다란 산맥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4285km 거리의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는 방대한 여정이 담겨 있다.

셰릴과 남동생은 어릴 적 폭력적인 아빠 때문에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자신과 남동생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준 따스하고 밝은 엄마 바비(로라 던) 덕에 그럭저럭 살아왔다. 하지만 엄마가 불과 45세의 나이에 말기암 판정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끝내 죽게 되자,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던 중심이 무너져 내린 셰릴 역시 따라 무너지게 된다.

마약과 무분별한 성생활로 심신이 망가지고, 결혼 생활도 끝이 난 셰릴은 죽은 엄마에게 떳떳하지 못한 딸인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삶의 전환점으로 삼을만한 무엇인가를 찾다가 덜컥 PCT를 걸어야겠다고 맘먹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

별로 깊은 고민과 준비 없이 장거리 캠핑용 배낭을 싸본 적도 없는 그녀는, 배낭을 메기는 커녕 대책 없이 커져버린 무거운 배낭 무게 때문에 바닥에서 구르고 배낭에 깔리기까지 한다. 이는 곧 그녀 앞에 놓인 PCT 트레킹이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며 그 배낭의 무게는 그녀가 짊어져야 할 삶의 고난함을 뜻하는 듯 하기도 한다.

발톱이 빠지고 등산화를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며, 타는 듯한 모하비 사막과 얼어붙은 캘리포니아를 지나고, 각종 야생 동물의 위협과 식수, 식량 부족 등등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면서 2분마다 ‘내가 여기를 왜 왔지?’, ‘그만 포기할까?’를 수도 없이 되뇌면서도 끝까지 그녀를 걷게 만들고 결국은 해내도록 밀어붙인 힘은 무엇일까?

여정의 내내 그녀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엄마 바비의 모습을 떠올린다. 때로는 보디가드처럼, 때로는 어린 딸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따스함으로 셰릴의 뒤를 따르는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로서의 엄마, 셰릴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냈어!’라기보다는 ‘엄마, 나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속삭인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2014년 에이즈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의 실화를 그린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았다. ‘크.레.이.지’, ‘영 빅토리아’ 등 전작에서도 특유의 섬세한 통찰력과 뛰어난 연출력을 발휘해 온 그는 ‘와일드’에서 절망의 끝에서 한 줄기의 희망을 찾아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며 수 천 킬로미터의 PCT를 걸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화를 그려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엉덩이는 들썩거렸다. 배낭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고 어떤 물건을 챙겨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달큰거렸다. 그러나 이내 그 달큰거림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충분해졌다. 비록 그 길 위에 서 있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이라는 길 위에 서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딘가로 떠나기보다 어딘가에 정착해 살아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