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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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61>
  • 한지윤
  • 승인 2019.01.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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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양우석 씨 댁에도 경사 났다고 야단이래. 양우석 씨만 해도 그래요. 그 나이에 아기가 생겼다고 그 집안이 발칵 뒤집혀질 정도래. 지난주인지 금주인지, 집안이 전부모여 잔치를 했대. 굉장히 좋아들 하고 있어.”
“그야 물론 좋은 일이겠죠.”
한 박사는 웃음기를 띠면서 마음속으로는 다른 일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 열흘 전 일이었다. 기혼녀라고 하면서 병원에 20대의 젊은 여자가 찾아왔다. 생리도 없고 입덧 같은 증상이 있어 임신이라고 생각되었으나 계속해서 기분도 좋지 않고 해서 한 달가량은 진찰을 받을 생각도 않고 있다가 이제 왔다는 것이다. 환자는 퍽 여위어 있었다.
“통 못 먹어요?”
“먹으면 토해서요.”
한 박사는 거의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임신반응을 보았더니 역시 마이너스였다. 이 환자는 내과라고 하기보다는 정확히 말한다면 암센터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만져보니 복부 쪽에 응어리가 촉진되었다. 한 박사는 환자에게 다른 내과병원으로 가 보라고 권했다. 그 결과 과연 위암이 그것도 말기였다고 환자의 어머니가 한 박사에게 전해 온 일이 있었다.
한 박사는 근래에 와서 배에 군살이 붙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운동 부족인가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골프를 치러 갈 여가도 없고,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조깅이란 달리기도 그렇고 해서 망설이고만 있었다. 대진으로 오는 김영철 의사는 한 박사가 의사란 육체노동자라고 할 때마다 ‘그렇다면 배가 나올 리가 없죠.’하고 의심스런 얼굴을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근육을 골고루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수영이란 수영복 하나로 되는 전신운동인 까닭에 여름에는 때때로 수영하러 갈 때도 있다. 그 외에는 운동이란 것은 걷는 일밖에 없었다. 시내에 나가는 일은 두 달에 한 번 정도나 될까. 그것도 서점에 가볼 때에나 가끔 있었다. 제일 손쉬운 일이 근방의 거리를 거닐어 보는 것이었다.

그 날도 박 여사를 전송하고 그 길로 버스를 타고 거리로 나왔다. 이 거리는 항구로서 참치의 원양어업 전진기지다. 버스종점 바로 앞에는 시커먼 기계기름으로 덮인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암벽 쪽으로 큰 냉동 창고가 두서너 채 늘어서 있었다. 바다 내음과 어구들의 내음 섞인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횟집, 음식점, 맥주집, 술집들도 있었다. 술집이 많고 어선의 선원들이 쓰는 모자랑 작업복들을 파는 노점상들도 있었다.
한 박사가 걷는 코스는 대강 정해져 있었다. 버스종점에서 경찰서 앞을 빠져 바른편에 원양어선인 참치잡이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암벽 쪽으로 슬슬 걷는 것이다. 때로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의 뒷길로 해서 채소, 과일, 생선 따위를 파는 저자거리를 지나는 수도 있었다.
생선가게를 기웃거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염을 곤두세우고 등이 구부러져 누워있는 새우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바다로 오그리고 기어갈 듯한 모양의 게를 볼 때마다 한 박사는 원시인처럼 월령을 생각한다. 만월 때의 게는 달빛에 비치는 자기 그림자가 무서워서 여윈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박사는 게는 구경만 하지 값이 비싸기 때문에 잘 사지는 않는다. 지금은 다랑어가 싼 때다. 은빛으로 쑥 빠진 칼날 같은 배를 한 놈이 얼음에 채인 통에 거꾸로 박혀져 있었다. 생선가게에서 요즘은 참치는 잘 볼 수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서 ‘선생님’하는 젊은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요즘 많이 있다 싶어 한 박사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산책 도중에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인 브레이크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한 박사님!”
하고 한 번 더 한 박사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돌아보니 서른 살 전후의 큰 몸매는 아니나 건강해 보이는 쭉 빠진 몸매를 한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감색의 슬랙스에 빨간색의 오버·블라우스를 입고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것이 구김 없는 소박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실례입니다만, 누구신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박선영이라고, 이름을 대도 기억 못하실 거예요.”
이 근방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갗이 백설처럼 고왔다.
“지난 달 말쯤에 선생님 병원에 갔었는데요.”
낮은 음성으로 낯선 여자가 말했다.
“그랬습니까?”
여자는 손에 조그마한 돈지갑을 쥐고 있었다. 이 근방에 살고 있으면서 반찬거리를 사러 왔구나 싶은 인상이었다.
“선생님, 이 곳에 어떻게 나오셨어요? 생선 사러 나오셨어요? 같이 골라 드려도 되죠?”
“아니, 나 뭘 사려고 온 것이 아닌데…… 지나면서 그저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박사는 말하면서 뒷길을 꺾어 다시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암벽까지 낯선 여자와 나란히 걸어갔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환자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않기로 하고 있어요. 차트가 있으면 머리에 퍼뜩 떠오르지만. 댁에서 어떻게 오셨는지 통 기억에 없습니다.”
한 박사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실 거예요. 환자는 많으니까요. 저, 말예요. 중절하러 갔었어요.”
“그래요?”
하고는 말했으나 한 박사는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절환자는 그것으로 끝이 나는 수가 많다. 예후가 어떤 경과를 가졌는가에 대해 기억에 남는 케이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함께 걷고 있는 이 여자는 수술 그 자체도  그 후에 경과도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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