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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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9.02.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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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세상-이윤엽 작가의 ‘우는 사람 ’
(왼쪽)56X76. 2011 作 <우는얼굴>, 150X30. 2003 作 <땅>

판화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때는 대학교 2학년 때다. 물론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운 판화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판화를 배우게 된 것은 학교 내에 그림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부흥기를 달리던 때, 최소한 우리가 필요로 하는 판화와 걸개그림 정도는 만들 수 있어야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돈이 없는 학생이었기에 나무 판화는 꿈도 못 꾸었고 커다란 고무 판화부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점점 나도 모르게 판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혼자 30여 점의 판화작품을 만들어 학내에 전시를 하기도 했다. 물론 잘해서가 아니라 그림패를 만들려면 회원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그림을 걸어두고 홍보를 했지만 단 한 명의 신입생이 들어왔다. 이후 그림패는 꾸준하게는 아니지만 그 명맥만큼은 유지하며 학교 내에 동아리방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다. 이후 2004년 동아리실 마저도 모두 정리했다. 그 당시 아무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동아리실에 남아 있던 쓸 만한 미술도구는 몽땅 내가 챙겨왔다. 물론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미술을 잠시 접어두고는 있지만 종종 옛날에 사용하던 도구들을 둘러보며 회환에 젖기도 한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무렵 한 전시장에 갔다가 한 작가의 판화작품 앞에서 전율을 느꼈다. 이윤엽 작가의 ‘땅’이었다. 2003년에 제작된 150*30의 초대형 크기의 판화작품으로 땅을 딛고 사는 우리네 민중들의 거친 발의 모습이 판화로 새겨진 작품이다. 조각도의 거친 질감과 함께 민중들의 힘든 인생살이, 더불어 민중들의 힘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윤엽 작가는 1968년생으로 판화가이며, 목수이기도 하고 현장미술가이기도 하다. 평택 대추리, 용산참사 현장, 희망버스와 함께 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기륭전자투쟁현장, 쌍용자동차 평택, 그리고 대한문현장, 대우 부평공장,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공장, 유성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이윤엽 작가는 늘 판화로 그들과 함께 했다. 이윤엽 작가가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투쟁현장의 소식을 알리는 웹자보가 되고, 투쟁을 상징하는 티셔츠가 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돼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이윤엽의 작업은 투쟁현장의 상황을 알리는 역할도 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함께 하고 있다는 연대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판화가인 이윤엽이 할 수 있는 투쟁의 방식이다.

성병숙 작가가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윤엽이를 봤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 자기는 민중미술가를 하고자 한 적이 없는데 어느새 자신의 꼬리표에 민중미술가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더라고. 그 말을 듣고 서로가 한참을 웃었다”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억울함을 말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당연한 애정,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알고 이를 예술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 그래서 민중미술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라고 말이다. 

판화의 가장 큰 장점은 대량 복제가 가능해 보급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래서 1980년대 민중미술 중에서도 판화가 발전했다. 다량으로 복제해 집회나 현장에서 소식을 알릴 수 있는 무기가 된 것이다. 현재는 많은 다양한 판화 기법들이 선보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판화가 주는 묵직함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다.

2011년에 발표한 ‘우는 사람’을 들여다보면 좀 더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우리네 민중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윤엽 작가의 작품에는 많은 얼굴이 등장한다. 우는 얼굴, 웃는 얼굴, 청소 노동자의 얼굴 등등 모두가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이다. 예쁘고 잘난 얼굴은 하나도 없다. 못 생기고 일그러져 있지만 나와 같이 숨 쉬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친밀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내 얼굴을 낯설게 들여다보기, 그 시작은 자화상이다. 많은 작가들이 자화상을 드로잉하며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한다. 이윤엽 작가는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실현하기보다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더 자주, 그리고 늘 들여다보며 자신을 타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이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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