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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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66>
  • 한지윤
  • 승인 2019.03.0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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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수술 때 착상이 없는, 즉 태아가 들어있지 않은 방을 긁었을 경우에도 임신 때와 같은 내용물이 나와요. 엄밀히 말한다면 틀리는 내용물이지만…… 5주나 6주 정도면 내용물도 적고 해서 좀처럼 구별이 안 되지요. 그래서 그 반쪽에 있는 태아는 무사하게 남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긴데요. 그 결과는 어떻든 선생의 공적이 아니겠습니까? 선생은 생명을 하나 건진 것이지요.”
“우울한 이야긴데요. 신부님. 그렇게 해서 생명을 건졌다는 것은 말입니다. 그럴 때 뭐라 하죠. 신부님 류로 말한다면 나도 신의 심부름꾼인데. 그것도 아주 더럽혀진 심부름꾼이지요.”
“더럽혀졌다고 할 것은 없어요. 인간의 선악은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과 그 결과가 명백하게 나타날 때까지는 결코 단순한 것은 아니니까……”
그 때였다. 신부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육십 세 정도의 여자였다.
“영철이네 아주머니군요.”
“실례합니다, 네.”

들어온 여자는 신부에게인지 한 박사 에게인지 깍듯이 인사를 했다. 한 박사는 흘끔 쳐다보고는 의자에 앉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손주딸 아기는 어때요?”
“감사합니다. 지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인데요. 덕택으로 다음 주 쯤은 수술이 될 것 같아서요.”
“다섯 살 이였죠?”
“여섯 살 인데요.”
“선천성 심장으로 지금 겨우 수술을 받게 되었대요. 소아병원에서. 선생님 알고 있습니까? 그 병원.”
신부는 아주머니와 한 박사 두 사람에게 말하고 있었다.
“소아병원은 들은 적은 있습니다만, 가 본 일은 없습니다.” 한 박사가 말했다.
“곧 수술이 될 줄 알고 입원을 했는데 폐렴이 되어서 수술 예정이 늦어졌다고 해서……”
“무슨 병인가요? 심방중격결손 인가요?”
한 박사도 신부인지 아주머니에겐지 물어 보았다.
“저는 몇 번 들어도 어려워서 외울 수가 없어요. 뭐라더라, 사, 사 뭐라고 하던데……”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렸다.
“파로- 사증증?”
“네, 네, 그거예요.”

“여기 계시는 영철이네 아주머닌 저희 신도이십니다. 이번 수술 받는 아이는 외손녀가 되죠. 사위는 신자가 아니라서 아기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워서…… 할머니는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있어요. 그런 심장병이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렇다면 세례라도 받아 주자는 거였습니다.”
“네, 맞아요. 그래요. 사위는 아직도 고집을 피우고 있어요. 그래도 계집애니까 가톨릭 신자로 해 주어도 좋겠지. 수술 전에는 신에게 빌어도 나쁘지는 않겠지 하는 사위의 생각으로 해서 반승낙은 받았어요.”
“그럼, 아주머니, 세례는 언제쯤이면 좋지요?”
“신부님 형편대로 하셔도 됩니다. 그래서 찾아 왔습니다.”
“전 금요일까지는 H수녀원에서 수녀들의 묵상을 지도하러 가야 하는데 손녀의 증상이 악화된다면 틈을 내 보도록 하지요.”
“아뇨. 이젠 열도 내리고해서.”
“그렇다면 토요일 오후로 할까요? 3시는 무리지만 4시면 닿을 수 있어요.”
“네,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는군요.”
“병원의 어디서 만나지요?”
“4시에 입구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한 선생도 좋으시다면 한 번 가 보시겠어요? 아직 못 가보셨다면 한 번쯤 참고가 될 것 같은데. 병원 부원장님이 우리 가톨릭 신도라서 저와는 잘 아는 사이입니다. 전화 걸어 두죠.”
“토요일 오후라면 같이 갈 수가 있지요. 대진이 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럼, 아주머니, 토요일 오후에 가지요.”
“네, 고맙습니다. 이렇게 수고를 끼쳐서……”
신부가 아주머니를 문까지 전송하러 일어서는 것을 기회로 한 박사도 일어섰다.
“돌아가시게요?”
“너무 오래 있으면 오금이 붙어버려 설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그러시다면, 가시는 길에 말씀한 나자렛 예수의 그림을 보고 가시면 어떨까요?”
성당은 볼품없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장엄하지도 않았고 어둡지도 않았다. 평판의 색유리가 십자가 형태로 박혀있는 높은 창에서는 석양빛의 은혜가 성당의 구석구석까지 비쳐 들고 있었다.

그림은 성당의 뒤쪽 벽에 걸려 있었다. 세로 4미터, 가로 3미터나 될 듯한 큰 것이었다. 화가는 빅토리오 비안커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 박사는 미술품의 감상력은 없었으나 그 그림은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수염이 난 예수가 부서진 마차를 수리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물 항아리를 든 성모마리아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의 발밑에는 대패 밥과 목수의 연장들이 이리저리 널려져 있었다. 마을 아이들이 5, 6명 예수의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뒤뜰에는 비둘기가 놀고 있고 산양이 두 마리 매어져 있었다. 멀리 완만한 언덕으로 포도밭이 보이고 늙은 양치기가 양떼를 몰고 있는 그림이었다.
“온화하게 그린 그림인 것 같습니다.”
한 박사는 그림에 눈을 둔 채로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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